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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2023년 12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①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여겨졌던 조국이 아니던가! 하지만 500년 이상을 이어온 조국은 더 이상 없었다. 1910년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조국이 망했는데 가문이 무슨 의미가 있 는가? 400년 지켜온 종가를 떠난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지난 몇 달간 석주의 망명일기 「서사록」을 읽어 왔다. 일기는 그날그날의 일들을 기록한 것이라는 점에서 회고록과는 다르다. 회고록은 세월이 흐른 뒤에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 한 것이다. 정리하는 과정에서 각색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일기는 그때그때의 모습이 생생하게 들어있는 ‘날 것’의 느낌이 나 는 생생한 원자료이다. 이제 필자는 그동안 읽어온 서사록을 역사, 언어, 정치, 학문, 그리고 고단한 삶 등의 주제를 가지고 순국 독자들과 함께 정 리 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기로 한다. 선열일기 | 석주 이상룡의 서사록 ⑩ 「서사록」 통해 이상룡의 구국 · 실천적 사상과 이념 재인식 아들 이준형 『석주유고』 10년 동안 정리, 편찬후 자결 실천하는 유학자 석주 이상룡 글 최진홍(월간 『순국』 편집위원) 「서사록」 연재를 마치며 1911년 1월 4일부터 같은 해 4월 13일 까지 백일 간의 망명 과정인 서사록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국가에 아무 사고가 없을 때는 국민들이 그 삶 을 즐기며 옛것을 지키는 것을 요의(要義)로 삼 는다.” 그렇다! 일반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조상으로부 터 내려온 전통을 지켜내며 삶을 즐기’는 것이다. 그 리고 국가의 의무는 이러한 요건을 제공해 주는 것이 다. 그런데 국가가 어려움이 극에 달하여 아예 망해 버리는 시기를 만나자 석주는 조용히 숨어서 사는 길 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기로 결정을 한다. 고성(固城) 이씨 400년 종가인 임청각(臨淸閣)을 두고 망명을 결 심한 것이다. 임청각은 400여 년을 한 곳에서 지켜온 삼불차(三 不借)의 유서 깊은 종가(宗家)였다. 삼불차란 아들, 학 문, 그리고 재산을 다른 곳에서 빌리지 않는다는 의 미이다. 석주가 내린 결론은 바로 만주행이었다. 그 렇다면 왜 만주였는가? 석주가 말한다. 만주는 우리 단군성조[檀聖]의 옛 터이며, 항도 천(恒道川)은 고구려의 국내성에서 가까운 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