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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독립운동가 열전 • 제암리 비극을 온몸으로 껴안은 “김씨부인” 83 (安鍾厚)·안경순(安慶淳)·안무순(安武淳)·안진순(安珍 淳)·안봉순(安鳳淳)·안유순(安有淳)·안종엽(安鍾燁)·안 필순(安弼淳)·안명순(安明淳)·안관순(安官淳)·안상용 (安相鎔)·조경칠(趙敬七)·홍순진(洪淳晋)·김정헌(金正 憲)·김덕용(金德用) 등이며, 여기에 고주리 학살피살 자 김흥열(金興烈)·김성열(金聖烈)·김세열(金世烈)·김 주업(金周業)·김주남(金周男)·김흥복(金興福)을 포함 하여 모두 29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연 구에서는 전체 희생자가 37명이라고도 보는 견해도 있다(국가보훈부, 「이달의 독립운동가 ‘홍원식’」 편). “일본군이 제암리교회에 총부리를 겨눈 것은 유 의해야 할 일이다. 조선 사람들이 전혀 무장을 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이는 전투행위가 아니다. 이것 은 거칠고 흥분한 몇몇 군인들이 저지른 일이 아니 라, 일본군의 정규 장교의 명령에 따라 조직적인 군 파견대가 저지른 일이었다. 그때에 진압할 저항이나 폭동도 없었다. 조선에 사법기관이 엄연히 존재하고 법정이 정기적으로 열리는데도, 그것을 법률위반 행 위로 고발할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것은 한마 디로 정당한 이유도 없는 계획적인 냉혹한 살육이었 다.” 이 글은 일본국민과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묻는 글인 데, 제암리 사건 이후 1919년 5월 28일자 『저팬 애드 버타이저』에 앨버트 피터가 쓴 글이다. 『두렁바위에 흐르는 눈물』에 나오는 글 일부를 필자가 정리한 것 이다.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 주변에는 제암리교회와 순 국자들의 무덤, 그리고 제암리학살 현장을 전세계에 알린 스코필드박사 동상 등이 있다. 이날 ‘김씨부 인’ 의 피학살현장을 둘러보는 자리에는 마침 방한 중인 배국희 미국 LA 대한인국민회 전 이사장과 함께했는 데, 그는 경내에 있는 스코필드 박사 동상을 보고 감 격해 했다. 중학교때 영어를 배운적이 있었다고 했 다. 학살의 참상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한 새로운 출 발,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을 나오며 나는 “제국주의 방아쇠 / 교회 안에 당겨지던 날 / 어린 핏덩이 끌어 안고 피 토하며 숨져간 여인” 김씨부인이 떠 올라 눈 시울이 붉어졌다. 필자와 함께 화성시독립기념관을 함께 방문한 미국 LA 대한인국 민회 배국희 전 이사장이 경내에 있는 스코필드 박사 동상 옆에서  기념촬영했다. 그는 중학교 때 스코필드 박사에게 영어를 배웠다 고 한다. 스코필드는 제암리학살 사실을 전세계에 알렸다. 한국외대 일본어과 졸업, 문학박사. 일본 와세다대학 연구원, 한국외대 연수평 가원 교수를 역임했으며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 로는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 『동고동락 부부독립운동가 104쌍 이야 기』, 시와 역사로 읽는 『서간도에 들꽃 피다』(전10권), 『여성독립운동가 300인  인물사전』 등 여성독립운동 관련 저서 20권과 다수의 저서가 있다. 필자 이윤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