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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창천에 일월이 명휘함은 천지도요 국가에 충성을 다하고 부조의 유지를 한결같이 이어받아 이어 실천함은 이륜지도요 어버이를 섬김에 효도를 다한 것은 고래로 우리 전통문화인 선행미덕이요 인자의 당연한 본무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실행하기 어려운일로 역사의 고금을 통하여 듣고 보지못한 충의대절을 대흥사 심적암의 의병전투사에서 볼수있다. 이곳은 조선조 융희3년 1909 기유7월 7일 밤 우리 의병과 왜적과의 격전했던 곳으로 당시의 지휘관은 추기엽 의병장과 황두일 의병장 황준성 심남일 강무경 송병운 이덕삼 강성택 의병장이다. 동년 7월 7일 장흥군 전투에서 밀려온 의병가 해남 완도지역의 의사 의병들이 함께 송지면 미황사로 집결하였다. 그곳에서 전력을 재정비하고 8월 9일 대흥사로 이동하면서 도중에 현산면 읍호리 이승지택에 들려 많은 후대와 일금 50량을 기증받았고 동면 덕흥리 김인옥씨가 황우 한마리를 주심으로 예정의 심적암에 도착하였다. 오랫동안의 피로를 풀면서 전략을 숙의하고 침실에 들면서 요로마다 초병을 세웠다. 밤 자정이 지나 새벽이 되도록 아무런 이상이 없으므로 초병들은 아믕을 놓고 절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왜적들의 급습으로 우리 의병과의 치열한 싸움이 순식간에 전개 되었다. 이 때 원통하게도 24명의 의사 의병이 순절하고 심허당 스님과 당시 불도를 강마하던 상좌스님 다섯 분도 함께 순사하였고 8명의 의사는 포로가 되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