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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를 이끄는 원로 중의 한 분으로 그의 지행이 이미 전국에 알려진 망사로서 대구에서도 또 임진왜란후 400년간 감히 손을 댈수없던 공신사필을 바로 잡아서 현재 310현의 호국의사들에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받들게 성사시킨 주역이며 또 전국유생들이 동참한 사단법인 염수회의 부설로 덕화여성대학을 창설해서 1기부터 19기까지 수강생을 수료시킴과 덕명학회장으로 그 명성이 저세할뿐 아니라 전국명벌들의 청문을 받아서 찬해준 글들 이 산적해 있는 유고가 타처에서는 보기어려운 양이며 또 그 선대의 충효사적을 선양한 이력등이 탁월한 점등을 참작할때 근세에서는 유례가 없는 선비라 아니할수없다. 수년전에는 영남유가 후손으로 영림회도 창의발족하였고 거년에는 보인학회를 창회하여 공을 학장으로 추대하였으며 보인은 논어중에 증자왈 "以文會友 以友輔仁"이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었다. 오등이 수불민하나 명색이 유가의 고벌로서 선참해서 종유동락하는 뜻에서 보인학회를 구성창회하여 일익발전하던중 지난 2004년 갑신년 7월 26일에 공이 타계하니 회우와 후학들은 짝을 잃은 기러리요 장수를 잃은 병사가 되어 이 애도함을 비에 새겨 이곳 충효동은 산남의진의 발상지요 충효재는 공이 생시에 추모하였던 동엄공 단오공 우공의 선재이며 그 경외에 공의 추모비를 세우니 삼구리 공의 유택에서 찬서리와 이슬의 향내를 맡으면서 오로내리시고 천국에서 공이여 고이 고이 잠드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