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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당시22세) 경기 광주 천주교 공동묘지에 안장 1959년 4월 13일 광주 출생 1977년 광주 제일고등학교 졸업 1978년 서울대 사회계열 입학 1979년 서울대 경제학과 진입 1981년 5월 27일 경제학과 4학년 재학 중 도서관에서 투신하여 운명 |162|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전두환정권 학생 동지의 삶과 죽음 독실한 카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동지는 어려서 영세를 받았고 (세례명은‘다 두’) 강한 희생정신의 소유자였다. 한때는 가톨릭 신부가 되고자 했고 강한 의지 와 책임감을 어릴 때부터 보여 왔다.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후 EHSA라는 써클에 가입하여 열심히 활동했으며 동지 의 얼굴 모습에서 보여주듯이 편안하고 푸근한 사람이었다. 고향 광주에서 대학살 만행이 자행되고 이에 대한 학내시위가 잦아지자 평소 말이 없던 동지는 더욱 말수가 적어졌다. 동지가 투신하던 그날도 학교에서는 학 생들의 시위가 있었다. 경제학과 4학년생으로 졸업을 앞두고 도서관에서 원서를 번역하고 있던 동지는 창 너머로 침묵시위를 벌이는 학우들이 무수한 경찰과 사 복형사들에게 구타당하며 끌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81년 5월 27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도서관과 아크로폴리스 주변에서 산 발적으로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던 그 때 도서관 6층에서“전두환 물러가 라”, “전두환 물러가라”, “전두환 물러가라”세 번의 구호소리와 함께 동지는 자 신의 몸을 던졌다. 선혈을 내쏟으며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널부러진 동지의 몸위로, 헤아릴 수도 없는 최루탄이 쏟아져 내렸다. 수천의 광주민중을 학살한 그들에게 한사람의 생 명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었다. “사람 죽었다”“비겁한 놈들아 나와 싸우자”비명 소리, 절규, 분노, 최루탄 연기, 폭음, 많은 학우들의 피눈물 속에 또 한 생명이 민 주의 제단에 바쳐졌다. 학원이 온통 중무장한 사복경찰로 채워지고 폭력과 체포, 위협의 눈초리에 숨 조차 막히던 그 때, 분노, 두려움, 부끄러움이 뒤섞인 채 싸움이 끝나갈 때, 동지 는 핸드마이크도, 유인물도 가지지 않은 빈 몸으로 몸을 던져 우리를 일깨운 것 이다. 동지의 죽음은 ’80년 광주학살의 진상규명과 이후 광주항쟁 계승투쟁에 대한 과제를 제시하였다. 끝내살리라 |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