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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 8년(1359)에 4만 여명의 홍건적이 침입해오자 관군들과 적을 무찌르는 큰 공을 세워
왕명의 출납과 군기를 맡는 추밀원 부사가 되었다.또 공민왕 10년(1361)에 20여만명의 홍건적이 침입하여 개경까지 오자 장군은 서북면 도지휘사로서 정세운(鄭世運), 안우(安祐), 김득배(金得培), 최영(崔瑩) 등과 함께 합심하여 개경을 탈환하고 적을 완전히 무찔렀다.
그러나 그의 공을 시기한 김용(金鏞)의 모략으로 인하여 안우, 김득배 등과 함께 살해되었다.
이때 장군의 나이 65세 였다. 왕은 다음에 역적 김용을 처형하고 장군에게 중서평 장정사의 벼슬과 충렬의 시호를 내렸다.
고려의 종묘라 할수있는 숭의전에 16공신으로 배향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