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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에 안긴 온화한 장암리는 광복의사 여러분이 배출되였으며 전국에서도 유명하신 박열의사는 본동에 있던 일신서당 출신이다. 장재로다. 지방치안에 몸바친 권공 상우는 시조 권행공의 35대손으로 고조인 서공께서 예천으로부터 이곳 장암리에 우거하여 루대를 살아 오던 중 부친 영호공과 모친 신우기 여사의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공은 천품이 총명하고 제반 처신이 타의 모범이 되어 장래가 매우 촉망되는 청소년으로 부모님 슬하에서 성장중 약관이 넘자 불행히도 6.25 동란이 발발하였다. 이때 공은 전투경찰대에 편입되어 루차 적군과 접전 중에(1950년 11월 19일) 불행하게도 전사하였으니 이때 향년 25세였다. 그후 부친 영호공께서 자식의 전사에 너무도 애통한 여지 상우의 소유로 있는 토지 317평을 동리 공동소유로 기증하니 지금의 이곳 동회관 대지 및 부지이다. 슬프다. 공이시여 상봉하솔의 행복도 접하지 못한 채 꽃다운 나이로 목숨은 나라에 바치고 재물은 동리에 시사했도다. 이에 동민일동은 공의 전사에 일제히 애도하며 명복을 빌고 빌면서 지금까지는 동리에서 위령제를 거행했으나 먼 후세까지 잊어서는 아니됨에 더욱 깊은 일념 아래 동민 일동의 뜻으로 촌석이나마 불망의 비를 세워 실사를 새겼으니 산수와 함께 영원하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