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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➊ • 김대락의 백하일기 ㉗ 81 황병일은 저녁밥을 먹고 갔다. 손진구가 바둑알 한 포를 보내왔다. 내가 심심해 할까 애오라지 시간을 보낼 계책으로 삼으라는 것이 다. 이 사람의 일마다 염려해주는 뜻이 고맙다. 황만영이 대구 한 마리를 보내왔다. 일찍이 내가 부탁한 것인데, 횟배를 치료할 거리로 대비해 둔다. 3일 황만영, 황도영, 주진수, 장성률, 김병목, 권동직과 족친 동삼(본명 김긍식), 그리고 문식과 영 식 두 조카가 모두 점심을 먹으니, 작은 잔치가 되었 다. 돼지고기와 소주와 국수 등의 음식을 차렸다. 4일 바람이 불다. 손녀가 추가(鄒街)의 시댁으로 갔다. 외숙 만사(挽 詞)를 지었다. 5일 아침에 육손이 요지로부터 돌아왔다. 6일 홍치순[순흥 살던 사람], 송 진격[영주 살던 사람], 이원행이 와 보 았다. 강남호가 그 아들의 병으로 의원 을 찾아가는 길에 들렀다. 집 아이[김형 식]가 만초[매부 이상룡]를 뵈러 위당 (葦塘)의 새 거처로 갔다. 전에 살던 곳 과 비교하면 이웃 간이라 하겠으나, 진 창을 무릅쓰고 험한 길을 넘는 일을 나 같은 노인으로서는 감당할 수가 없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혹 들메끈을 메고 찾아가는 낙이 있을지 모르겠다. 문극(文極)이 오지 않았는데, 그 사이 에 균화(囷 化)의 슬픔[아이를 잃은 슬픔]을 당했다니 매우 한탄스럽다. 안사람이 주진수의 집에 갔다가 저녁이 되어 돌아왔다. 창손 어미의 동서가 또 조카 영식 집으로 갔다. 이날 사동(砂洞)에 보내는 만장(挽 章) 5언과 7언 두 편을 지었다. 7일 이형국(매부 이상룡의 조카), 황의영, 강 남호와 동삼이 와서 보고, 손진구가 와서 잤다. 소가 울진군 평해읍에 있는 ‘애국지사 국오 황만영 선생 기념비(뉴시스 제공)’ 김대락의 집에 자주 왕래한 황 만영(1875~1939, 애족장) 이형국(1886~1931, 애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