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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헌문공은 1870년 5월 9일 포항시 남구 장기면 죽정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무장, 호는 뇌현이다. 공은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을 계기로 을미의병이 전국적으로 봉기하자 1896년 결성된 영일지역 의진의 중군장으로 활약하였다. 그 뒤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압하여 을사5조약을 체결하고 외교권박탈과 통감부를 설치하는등으로 나라가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가 됨을 보고 1806년 5월 격문을 보내 300여명의 의병을 다시 모집하였고, 가재를 팔고 친지들의 도움을 받는가 하면 장기출신으로 각 도,군의 의병연락책인 정치익을 통하여 무기와 군복을 확보하여 장기의진을 결성하였다. 공이 이끄는 의진은 경주, 연일, 죽장 일대의 일제 주둔병을 격파하고 정환직을 중심으로 한 산남의진, 신돌석을 중심으로 한 영해의진과도 합세하면서 기각지세를 이루었다. 특히 1908년 1월 3일 의병 백 수십명이 장기읍성을 공격하여 일본 순사 수명을 죽이고 총칼을 노획한 뒤에 주재소등을 소각시킨 전적은 의진의 연합작전으로 "한국독립운동사 자료집"외 여러 역사자료에 기록되어 있다. 공은 1908년 5월 7일 장기군 내남면 공동에서 일본경찰대 아사노순사 일행에게 체포되었다. 이어서 산남의진의 3대 대장 최세윤마저도 그해 7월 장기 용동에서 적에게 체포됨으로써, 의진은 구심력을 잃었으니 이 얼마나 원통한 일인가! 체포된 공은 1909년 10월 1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동지들을 찾아 구국운동을 계획하였으나, 악형의 여독인지 1926년 1월 25일 향년 5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정부에서는 공의 공적을 기려 1977년 12월 13일 건국포장을 추서하였고, 다시 1990년 12월 26일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