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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독립운동으 우리민족이 일본의 침략에 의하여 빼앗겼던 국가의 주권과 민족의 독립을 되찾기 위하여 거족적으로 봉기하였던 항일투쟁으로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독립만세의 민족적 절규는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퍼졌다. 이 고장 음성의 만세시위는 3월 18일과 3월 28일 그리고 4월 6일 세번있었는데 그중 3월 28일 사위는 하루전인 초천리 백양부락 정기선집 서당에서 서울서 온 김영익 청년의 제보에 의하여 서당생도 정민영 최만득 정대영등이 음성장날을 기하여 만세시위를 벌일것을 밀의하고 다음날 28일 하오 2시경 이들이 음성시장에 이르러 군중대열의 선두에 서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쳐부르고 시위를 전개하였으며 다시 4월 6일밤 10시경 산위에서 수백명의 군중이 횃불을 올리며 독립만세시위를 벌였다. 초천리서당 생도 만세시위의거에서 김영익 정민영 최만득 정대영등 청년들은 왜경에게 체포되어 갖은 고초를 당하였다. 그후 김영익 최만득은 외지로 피신하고 정민영 정대영은 모진 수난을 당하면서도 고향을 지키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았다. 광복후 음성군에서는 정민영 정대영의 당시 의거를 찬양하고 표창코자 하였으나 광복42주년을 맞이하면서 그날의 장한 일을 받들어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이곳 백양마을에 이 비를 세운다.
1987년 8월 15일
동산 이종춘 지어 감산 권기흥 쓰고 건립추진위원회는 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