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page
8 2026년 3월 Column 편집위원 칼럼 작은 소리 큰 울림 독립운동은 오늘의 민주주의와 시민적 실천으로 이어지는 역사이다. 해외 지식인 운동과 국내 민중운동이 유기적으 로 연결된 초국가적 독립운동이라는 점에서, 3·1운동은 세계사적으로도 주목할 만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한편, 3월 1일은 우 리에게 일본을 생각하게 하는 날이다.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향후 리더십이 시험받는 지점은 원칙적 국가관과 이웃 국 가에 대한 외교적 절제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오늘의 민주주의와 시민적 실천으로 이어져 일본 최근 선거 자민당 압승, 한일 협력의 길 열어야 글ㅣ김인덕(청암대학교 교수, 본지 편집위원) 가장 대표적 독립운동, 3·1운동 3·1운동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독립운동이자, 오늘날까지도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와 시 민의식의 기원으로 자주 소환되는 역사적 사건이다. 일반적으로 이 민족운동은 1919년 3월 1일 서울에 서 민 족대표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이를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만세 시위가 확산된 사건으로 이해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만으로는 3·1운동이 지닌 역사적 깊이와 구조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3·1 운동 은 하루아침에 발생한 사건이 아니다. 장기간에 걸쳐 축적된 사상과 조직, 그리고 국내외를 넘나든 독립 운동 의 흐름이 응축되어 폭발한 결과였다. 재일(在日) 역사학자 박경식은 2·8 독립선언은 3·1 독립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다했고, 이후의 독립운 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3월 1일 일제의 식민지 ‘조선’ 국내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수 백 명 의 재일유학생은 학업을 내던지고 돌아가 직접 운동에 참가한 사실에 주목했다. 필자는 한국사의 시점과 시선을 국경 밖인 일본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1910년대 일본 에는 수천 명의 조선인 유학생이 체류하고 있었다. 이들은 식민지 조선에서 제한된 교육 환경을 경험한 뒤, 더 넓 은 학문 세계를 향해 일본으로 건너간 청년들이었다.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중심부에서 식민지 지배 의 구 다시 3·1운동을 기억한다 : 1919년에 그치지 않고 현재까지 큰 의미와 시사점 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