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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12월31일 수요일 8 (제228호) 관향조 종친회 상주박씨 판서공파대종회(회장 광기) 는지난4일전남순천시 쌍지리세장산에 서 순천입향조 운곡공(휘 증손)을 비롯한 아들 장남 기(杞) 차남 매(梅) 형제, 손자 승사랑(휘 대조) 남포공(휘 대붕)의 가을 시향을대종회주관으로지냈다. 제향전묘소가실전된판서공이하선조 영모단에 박양근 초헌관을 비롯한 제관이 제수를 진설, 참배하고 그동안 도리를 못 해 죄송하다며 잔을 올리는 고유에 이어 박철수운곡공종회장의집례로운곡공묘 역에서 합동 제향을 봉행했다. 이날 제관 은 초헌관 양근 상주(상산)박씨대종회장, 아헌관 도열 화성문중 종손, 종헌관 옥석, 대축병구현종등이각각맡았다. 제향 후 광기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쌀 쌀한날씨에도불구하고80여종원이참석 해주어 감사하다며 내년 향사에도 이처럼 묘전을가득메워주실것을당부했다. 원로박홍민고문은제례는엄숙함과절 도 있는 예절이 중요시 된다며 복장 등 참 여하는종원들의자세에대해지적하고성 숙한제례문화정착을강조했다. 전남 순천과 광양, 여수에 큰 집성촌을 이루고있는상주박씨판서공파종중의순 천입향은운곡공박증손선생으로부터문 호가 열렸다. 그리고 매년 향사에 경기 화 성시 상암공 후 도원재 선생 후손들이 10 여명이참례하면서일가의정을나누었다. 양(兩)종중은특별한인연을이어오고있 다.운곡공은족대부인도원재(휘세희)공 문하에서 경전을 강토(講討)하며 심신과 언행이바르고총명하여스승의신망과총 애를 받았다. 그러나 1519년 기묘사화로 도원재공께서 강계로 유배를 가면서 세도 (世道,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도리)의 병이 날로 깊으니 영진하지 말 것을 당부 하여십여년간몸을감추고도학에전념 하던 차 1530년 도원재공의 부음을 듣고 단신으로강계로가서시신을수습하여남 양으로 운구 안장하였다. 사화에 연루된 죄인의 시신을 수습하기는 어려운 일인데 운곡공으로 인해 도원재공의 유해가 보존 된 것이다. 이에 후손들은 순천으로 내려 간 운곡공을 찾아 예를 다했고, 사후에도 수 백 년 간 향사에 참례하고 순천의 운곡 공 후예는 경기 화성 향사에 적극 참여하 면서교류하고소통하며정을나누고있는 것이다. 운곡공은 1496년 경기도 남양에서 태어 나 부인 청주한씨와 장남 기(杞) 차남 매 (梅) 형제를 데리고 전남 순천에 정착한 이래 지역의 문풍을 크게 일으켰다. 운곡 공에 대해 정암 조광조 선생도 군자 인물 이라며극찬하였다. 1519년 기묘사화 후 부인 청주한씨와 아 들기(奇),매(梅)형제와가족그리고사위 양천인허형을대동하고남하하여전남순 천황전을거쳐상사면쌍지리에정착했다. 운곡공은슬하에기(杞),매(梅)형제를 두었는데 장남 기(杞)는 통선랑(通善郞) 이고, 차남 매(梅)는 중종조에 병절교위 부사맹이다. 장남 기(杞)의 아들 대조는 승사랑이고 그의아들민행(敏行)은광양시봉강면평 전문중 묘역에서 음력 10월 17일 제향을 봉행한다. 병절교위 부사맹(휘 매)의 아들 대붕 (大鵬)은문무를겸했다.사마시에급제하 여주부로내금위승위부위에봉직하였다. 1589년정여립의변란인기축옥사(己丑獄 死)때에 상소를 올렸다가 투옥된 후 풀려 나 낙향하였다. 당시 상 소는 간신을 소탕 해야한다는것인데오히려간신들에의해 투옥된것이라하겠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 창의 하여 중봉조헌,제봉고경명과함께금산 전투에서 많은 왜적을 물리치고 장열하게 전몰하였으니 상사면 동백 와룡산 아래에 초혼장사했다.남포공의활약상은호남지 역 의병장인 회재 박광옥, 황찬 박천정 등 의 기록에도 전해지고 금산사재 절의록, 호남절의록에 전해지고 원종공신에 녹훈 되었다. 한편 임란공신 남포공(휘 대붕)의 아들 민홍(敏弘), 손자 근(謹)·간(諫), 증손 희 훈(希勛)·희열(希說)등3대5위의제향은 운곡공제향직후남포공종중주관으로운 곡정사에서 11시 30분 정용(正傭) 집례의 집전(執典)으로 진행되었다. 제관은 초헌 관 홍일(洪一), 아헌관 봉석(鳳錫), 종헌 관상모(尙模) 축관현모(玄模)상천문중 회장이각각맡아정성을다했다. 남포공의아들휘민홍은1542년태어나 음직으로 절제사이고 장자 근(謹)은 학생 이고, 근의 아들 희훈의 부인 목천장씨는 기묘명현목원군장응두의손녀이다.절제 사공의차남간(諫)은선교랑행북부주부 이고 그의 아들 희열은 영조 때 통훈대부 장예원판결사이다. 남포공종중은 최근 우리 종중사를 새로 쓰고 있는 문중이다. 지난 여름 한마음대 회에 600여 성손이 참여하면서 지역사회 를 깜짝 놀라게 했고, 지역의 토반으로 그 책임과의무를다하기위해순천시에인재 육성기금1천만원을기탁했다. 상주박씨판서공파가을시향봉행 순천입향조운곡공·광양평전묘원·남포공종중븣11월4일-6일 제관,왼쪽부터옥석,도열,양근,병구,철수순 박홍민고문 박광기회장 남포공종중시향봉행후운곡정사에서참례한종원들이기념촬영을하고있다. 밀양박씨 규정 공후 기백공파종 친회(회장 박영렬, 법무법인 대륙아 주 대표변호사)는 지난 12월 1일(음, 10월12일) 경기도 하남시 감이동 기 백공 묘역에서 박 영렬기백공파종친회회장을비롯,박낙규 규정공파대종회회장,박범신낙촌공파회 장, 박영록 기백공파 수석부회장 등 전국 에서 모인 종원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라기원 2082년도(서기 2025년) 기백공 휘,자흥세일사를성황리에거행했다. 이날기백공(휘,자흥)세일사초헌관에 는 박낙규 규정공파대종회 회장이 헌작했 으며,아헌관에는박상용기백공파정字예 문중 종손, 종헌관에는 박희철 기백공파 유字상문중회장,집례관에박영록기백공 파 수석부회장, 대축관에 박시열 종원, 좌 집사에 박경열 이사, 우집사에 박근열 이 사가봉사했다. 기백공 세일사 후 진행된 ‘畿伯公 ‘流芳 百世’除幕式‘도 성대하게 거행됐으며, 내 외빈 소개, 박영렬회장 인사, 박낙규 규정 공파대종회 회장 축사, 비문해설, 제막식 순으로행사가진행됐다. 비문내용을살펴보면, 【畿伯公德澤 流芳百世, 嗣孫四百餘年 盡誠奉祀,二千二十五年 十二月初一日 時 享, 密陽朴氏 糾正公派 大宗會 會長 洛圭 謹撰, 墓下 畿伯公宗親會 謹立】 畿伯公德 澤 流芳百世(기백공덕택 류방백세)는 기 백공 덕택으로 향기가 백세에 흐른다. 라 는 뜻으로 븮기백공의 훌륭한 명성이나 공 적이 후대에 길이 전하여 지다븯라는 뜻이 다. 嗣孫四百餘年 盡誠奉祀는 대를 이어 40 0여년간 정성을 다해 제사를 모셔왔다는 내용이다.석비뒷면애는기백공의자(子) 8명(정예,희순,유상,견인,자소,수만,수 원,해인)과 후손 일동이 기록되어 기백공 의은덕을기리고있다. 박영렬회장은기백공세일사및유방백 세 제막식 인사를 통해 “후손들이 시향 및 제막식을통해기백공의은덕을기리고감 사하는마음을가지길바란다.”며“기백공 파종친회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 다.”고말했다, 특히,“규정공파 및 낙촌공파,숙민공파 와의유대강화를통해기백공의정통성과 위상을 높이는 데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박낙규 규정공파대종회 회장은 축사를 통해 “규정공파 회장으로서 전임 규정공 파 박찬문 대종회장 이후 70여년이 지난 오늘 숙민공의 장자인 기백공의 세일사에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하다. 기백공의 덕망 과 은덕을 잘 받들어 숙민공 장자로서의 역할을기대한다.함께발전하는종친회가 되길 바란다고 기백공종친회의 역할을 주 문했다. 박범신 낙촌공파종친회 회장도 제막식 축사를 통해 “숙민공위 후손으로서 선조 들의 뜻을 잘 받들어 낙촌공 이하 기백공 과 읍백당 등 예하 문중들이 종사에 있어 정쟁이 없는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 주길 바란다.”며통합을강조했다. 기백공은 조선 광해군때 영의정을 지내 신 숙민공 휘, 승종의 장자(長子)로 휘는 자흥이다.전라관찰사와병조참판,성균관 대사성, 경기관찰사, 개성부유수 등을 역 임했다. 기백공은 따님이 광해군의 세자 (이지)빈으로광해군이폐위되던날부친 숙민공과 함께 검천(현,경기도 하남시 감 이동) 선산에서 자결함으로써 나라와 임 금에 대한 충절을 다했다. 이후 1857년(철 종8년)에관직이복권되었으며,기백공파 후손들이 현재까지 400여 년 간 봉사해 오 고 있다. /자료제공기백공파종친회 총무이사박성용(010 -8209-4315) 신라기원2082년도밀양박씨기백공(휘자흥)歲一 祀성료 제향광경,이날 제향에박낙규규정공파대종회장이 초헌관으로 헌작했다. 박영렬회장 상주박씨 운곡공종중(회장 철수)은 지 난6일승사랑공(휘대조)의아들민행·민 복·민규삼형제와민보의아들인,손자신 방·신국 등 3대 6위의 제향을 광양시 봉강 문 비봉산 자락 묘원에서 봉행하였다. 이 날제향에는초헌관박길석(33世),아헌관 박청만(36世),종헌관 박유경(37世),집례 박철수(35世,운곡공회장) 우집사 박근석 (33世),좌집사 박경수(34世)현종이 각각 맡았다. 운곡공 종중은 공의 장자 휘 기(杞)의 후손으로 장파(長派)이다. 통선랑공(휘 기)는 부인 창녕성씨와의 사이에 승사랑 (承仕郞)휘대조(大틘 )를낳았으며,승사 랑 휘 대조는 단인 제주양씨와의 사이에 민행·민복·민구 등 삼형제를 두었는데 장 남 민행(民行)은 훈(訓)·회(誨) 형제인데 장남 훈(訓)은 아들 성량이 무후(无后)이 고,차남회(誨)는어모장군훈령원정으로 여수율촌문중으로세계를이룬다. 승사랑공의 차남 민복(民復)은 아들 4 형제(인·당·양·진)를 두었는데 장남 인 (認)은무과에올라선전관으로아들신방 (信邦)·신국(信國) 형제 중 장남 신방(信 邦)은병절교위이다. 그의아들시석(時錫)은여수율촌행정 문중,차남신국(信國)은종사랑으로광양 봉강 봉촌문중으로 나뉘 고, 승사랑공(휘 민복)의 차남 휘 당은 계공랑(啓功郞)으 로광양골약중동문중,삼남휘양은순천 해룡계당문중,사남휘진은광양도청문 중이다. 한편 이날 제향 후 철수 회장은 종원 여 러분들의적극적인성원으로종중이잘운 영되고 있다며 감사함을 표시하고 지속적 인성원을당부했다. 상주박씨운곡공종중시향봉행 광양평전묘원 함양박씨 동정공(휘 선)의 후예로 성종 25년(1494) 광주에서 처음 보성읍 택촌마 을로이거하여지역의토성으로크게번성 한회산공종중의시향이지난1일있었다. 회산공 종중(회장 해욱)은 이날 제향전 10시부 보성군 회천면 객산길18-15 영모 재관리실에서총회를열고감사보고와운 영 및 재정·결산보고를 원안 접수하고 기 타토의를통해적극적인참여와종중의제 향의례체계화등을토론했다. 박해욱 회장은 임기동안 투명한 운영과 종재 관리에 만전을 기하려 노력하였으나 종원여러분의 기대에 못 미쳤는지 참석한 종원들이 줄어들고 있다며 적극적인 동참 을 촉구했다. 이어 원로분들이 세상을 떠 나고 거동이 불편하여 불참하면서 제례마 저위태롭게되고있어전통제례를준수하 며 시류에 맞도록 체계화 나갈 것이라며 협조를당부했다. 총회후분정을마치고회산공선조의묘 역에서는 해욱 회장, 해오, 해종 현종(賢 宗)이 초·아·종헌을 맡았고, 영모재의 제 관은 점섭,찬석,해종 현종이 그리고 집례 와 축관은 본보 상섭 국장이 맡아 제례 절 차와방법등을자세히설명하며집전했다. 회산공(懷山公)은 동정공(휘 鮮)의 손 자이다. 함양박씨 중시조 상서공 휘 선 (善)의 13세(世)이고 제1파 군기소감공 (휘 지문)의 8세(世)이다. 휘는 이량(以 良), 호는 회산(懷山), 1447년(세종29) 광 주에서태어나성종조에사마시에올라지 평과선박과군함의관리를맡아보던전함 사(典艦司) 제검(提檢, 정4품)을 지내다 연산군이 폭군의 근성이 발동되어 국정은 뒤로한채쾌락(快樂)과황음(荒淫)에빠 져있음에 은거(隱居)하며 불취(不就)하 고 후학을 가르치는데 매진하다 중종조에 사림(士林)의 천거로 세자좌빈객이 되고 이조판서에올랐다. 회산공은 성종 25년(1494) 광주에서 처 음보성읍택촌마을로이거하였으며,중종 12년(1517,정축)회산공이 서거함에 회천 면 객산리 자좌(子坐)에 예장(禮葬) 되었으며, 회 산공의사패지는묘소에서 보이는 곳까지로 보성군 회천면 바다 건너까지로 그 면적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니세자의사부로서 깊은 학문과 성품을 짐작 해볼만하다. 회산공은 아들 사형제 (태손,만손,천손,억손)을 두었으나 장남과 차남은 후사가 없고 삼남 휘 천손(千孫)이 또 사 형제를두면서크게번창하게된다. 삼남 휘 천손(千孫)의 자(字)는 경승 (慶承), 號는 월계(月溪)이다. 1488년(홍 치1, 성종19) 태어났으며 진사시에 올라 증손자 성인(지족당공)의 귀(貴)로 인해 좌통례에 증직되었으며,숙부인 여양진씨 와의 사이에 사형제(영견, 영정, 영상, 영 진)을두었다. 월계공(月溪公)의 장남 영견(永堅)은 무과에 올라 만호(종4품)를 역임하였고, 보성읍대야리모령마을로이주하다. 월계공의 차남 영정(永貞)은 별제(別 提)를 역임하고 손자 지족당의 귀(貴)로 장례원 판결사에 증직되었다. 그의 아들 령( 룔 )의 자(字)는 수옹(壽翁), 호(號)는 운헌(雲軒)으로 예빈시주부를 지내고 아 들의 귀(貴)로 호조판서에 증직되었으며, 슬하에 정부인 창녕조씨와 전주최씨 사이 에 아들 성인,순인, 홍인, 유인,안인 오형 제를두었다. 한편 회산공의 후손들은 600여 세거지 를 지키며 지역의 토반으로 충(忠), 효 (孝), 절(節)의 모범을 보이는 등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선조의 유업을 계승 발전 시키고있어지역에서칭송이자자하다. 함양박씨회산공종중시향봉행 전남보성입향조휘이량(以良)공이하선조 박해욱회장뷺전통제례를준수하며시류에맞도록체계화나갈것뷻 회산공묘제제관,오른쪽부터해욱,해오,해종,천석순(順) 영모재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