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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10월31일 금요일 8 (제226호) 관향조 종친회 목조건물(齋舍)화재·해충걱 정끝 보장(AS)5년 조상의얼과혼이담긴목조문화재지킴이가되고자평생을걸었습니다. ㈜ 한 국특 수 불연은모든역량을동원하여방염방충액을개발하여2012년문화 재청으로국내최초KD-500에이어 최근KD-600을한번더인증받았습니다.한번시공으로30년을븣 목조문화재이제화재와해충으로부터안전하게지켜드리겠습니다. 시공문의:대표박용태(밀성박씨 행산공后)010-2514-7175뱚 숭례문 나주향교 수원팔달문 순천향대학교아산 학연구소와인산서원 복원추진협의회에서 는 지난 24일 오후 2 시 아산시 온양 제일 호텔 2층 크리스탈홀 에서‘제5회인산서원 배향인물 재조명, 잠야 박지계를 중심으 로’의 주제로 제23차 학술대회를 개최했 다.이번 학술대회는 아산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인산서원에 배향되었던 인물을 중 심으로 4차례에 걸쳐 유현들에 대한 학술 행사를성공적으로개최하고,마무리단계 로성리학자로서평생동안일관하여성리 학적논쟁의중심에있었던잠야선생의진 면목이 충분하고 확실히 정립되도록 다양 한차원에서조명해보고자이루어졌으며, 이를 계기로 인산서원에 배향되었던 인물 에대한심도있는연구와인산서원의복원 가능성을논의하는장이되길염원했다. 이날 학술대회는 1부 개회식, 2부 주제 발표및토론순서로진행된가운데1부개 회식에서 맹주완 아산학연구소장은 개회 사를 통해 조선 500년을 떠받친 것이 성리 학이었고 그 중심에 유학자들이 있었고, 유학을장려하는또한축을지역의서원이 감당하였다며 아산 최초의 서원인 인산서 원 복원은 아산의 위상과 전통문화 계승 차원에서 의미가 크기에 “이번 학술대회 를 계기로 보다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지 길 기대한다”며 서원 복원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않았다. 박종덕 인산서원복원추진협희회장은 이번학술대회는인산서원배향인물중한 분이신잠야박지계선생의학문과덕행을 깊이있게조명하는소중한시간이될것이 라고 말하고 아산 유림이 150여 년간 간직 해온소망이이루어질수있도록인산서원 복원에 관기기관과 유림 여러분의 적극적 인참여와지원을간곡히당부했다. 잠야선생의13대종손인박면용잠야공 파종친회장은선생의학문과덕행을재조 명하는 학술대회를 열게 된 것을 후손 대 표로서매우기쁘게생각하며진심으로감 사를 드리며, 이번 학술대회는 선생의 사 상과정신을현대적시각으로심층분석하 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될것이라고말했다. 2부 주제발표에서 한양대학교 김용헌 교수는 ‘잠야 박지계의 철학사상과 사상 사적 의미’에서 뷺박지계는 자신의 예설이 임금의 뜻에 영합한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남의후사가된경우와조부에게서나라를 받은경우를구분해야한다는원칙을일관 되게 고수했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무부 (無父)의지경즉이단으로귀결된다고판 단했기 때문이다. 그 가 많은 비난에도 불 구하고자신의예설을설파했던데는암수 의분별,즉옳고그름의분별을방치할수 없다는 신념이 자리하고 있었다.뷻라고 하 였다. 건양대학교 김문준 교수는 ‘잠야 박지 계의 도학정신과 성리학’에서 뷺박지계의 학문과사상은경학(經學)과성리학(性理 學)과 예학(禮學)으로 체계화되었으며, 당시 사회 문제의식을 반영하였다. 그는 경학(經學)과 주자서에 대해 깊이 천착하 였으며, 그의 학문은 지식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도를 행하 기 위한 실천 방편이었으며, 인간의 본 성 인 븮성(性)븯의 순수한 도덕성을 드러내며, 이를바탕으로예행(禮行)을통하여사회 혼란을 극복하고 올바른 세상을 세우고자 함이었다.뷻라고발표했다. 전 호서대 김일환 교수 ‘잠야 박지계의 강학활동-조극선을 중심으로’에서 뷺박지 계는 17세기 아산에 새로 입향(入鄕)하여 성리학 연구와 강학활동으로 아산 지역의 유학적 전통과 기반을 넓히고, 그 수준을 높이는데기여한유학자이다.따라서17세 기 아산유학을 성리학풍으로 새롭게 높이 는데 초석을 놓은 인물이 바로 잠야 박지 계라할 수 있다.이런 전통이 아산 지역의 문화정체성을 형성하는 토대가 되었기에 앞으로도 계속 재 조망이 되어야 할 것이 다.뷻고주장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김학수 교수는 ‘잠야 박지계 문파의 형성과 전개’의 주제의 발 표에서 뷺잠야문파의 형성 시점은 박지계 의강학이본격화되었던17세기초반이었 으며, 특히 1613년 계축옥사의 정치적 소 용돌이 속에서 이루어진 븮신창이 거(新昌 移居)븯는 온양·덕산·청양·공주 등지 학인 들의 입문을 촉진하여 잠야문파의 외연을 확장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 김극형·원두표·원두추·홍진례·변호길·변 인길 등 서울 및 근기권 인사들의 내학활 동 이 더해지면서 잠야문파는 븮서울-호서 권븯이 연접하는 공동체로서의 체격 을 갖 출 수 있었던 것이다.뷻 등 잠야 박지계의 학문적계보와시대적영향력,인산서원의 역사적의의등을각각발표되었다. 이어 김기승 순천향대 명예교수가 좌장 으로 진행된 종합토론은 군산대학교 박학 래 교수,충남대김창경 교수,충남대충청 문화연구소 성봉헌 연구위원,충남대학교 이근호교수가각각토론자로나섰다. 이에 이날 발표된 김용헌 교수의 ‘잠야 박지계의 철학사상과 사상사적 의미’ 머 리말을소개해본다. [잠야박지계의철학사상과그사상사적 의미] 박지계(1573~1635)가 오늘날 우리에게 조선 중기의 저명한 학자로 알려진 것은 두 가지 역사적 사건과 관련해서이다. 하 나는 인조반정 직후에 김장생(金長生,154 8~1631), 장현광(1554~1637)과 함께 발탁 돼 중앙 정계에 진출한 것이고, 다른 하나 는 인조 와 그의 생부·생모와의 관계를 어 떻게설정할것인가를둘러싼일련의의례 논쟁에참여한것이다.상대적으로젊었던 박지계가당대최고의학자로평가받던김 장생, 장현광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것 은 그만큼 그의 학문적 위상이 높았다는 방증이다. 특히 그의 학문적 수준이 유감 없이 발휘된 것은 예학 분야로서 반정 직 후에문제가된생부정원군(定遠君)에대 한 인조의 호칭 문제, 생모 계운궁의 상 (喪)에서 인조가 입어야 할 상복 문제, 그 리고정원군의원종추승문제로이어지는 인조 대 의례논쟁이 그것이다. 기존 연구 에서 밝혀졌듯이, 이 일련의 의례 논쟁에 서박지계는흔히공론으로불리는사림의 대체적인 주장에 맞서 인조 및 이귀·최명 길 등과 견해를 같이했다. 반면에 기호사 림의 대표 격인 김장생은 인조가 1625년 (인조 원년) 사묘제(私廟祭)에 정원군을 백숙부로 호칭해야 하고 1626년(인조 4 년) 궁의 상에 1년인 자최부장기복(齊衰 不服)을 입어야 하며,당연히 정원군을 추 숭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일 련의주장은이견이없었던것은아니지만 기호, 영남 할 것 없이 사림의 폭 넓은 지지 를 받았다. 반면에 박지계는 생부 정원군 을아버지[考]로불러야하고계운궁을위 해서는 삼년복을 입어야 한다고 역설했는 데,이러한주장에는기본적으로정원군을 추숭해서종묘에모셔야한다는의미가함 축되어 있었고 그러한 만큼 인조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했다. 결국 의례를 둘 러싸고 첨예하게 맞선 김장생과 박지계의 예론은 인조가 선조의 왕통을 계승했다는 전제아래인조와정원군의관계를어떻게 설정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김장생은 인조가 입승대통(入承大統)즉 선조의 왕 통을이은만큼생부인정원군으로부터출 계한 것이며, 따라서 이에 준하는 예제를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의 생 각처럼 인조가 선조의 왕통을 계승했다는 점을 주목하면, 선조와 인조 사이에는 당 연히부자의의리가있으므로인조가정원 군을 아버지로 칭하는 것은 대통(大統)을 어지럽히는 것은 물론 아버지가 둘이라는 혐의가 있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선조와 인조사이에부자의의리가있다고하더라 도 실제로 그들이 실제로 조부-손자 관계 임을 감안하면, 인조가 생부를 백숙부로 부른다는것은일반정서상받아들이기쉽 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인조에게 아버지가 없게 된다는 문제가 발생 한다. 박지계가 의례논쟁에서집요하게파고든것이바로 이문제이다.사실방친(傍親)에출계하면 그의생부는백숙부가되는것이자연스럽 다. 하지만 박지계는 인조가 정원군의 형 제인 광해군의 뒤를 이은 것이 아니라 조 부인선조의뒤를이었다는사실에주목했 다.그는 븮남의 후사가 된 사람븯(爲人後者) 과 븮조부의 후사가 된 사람븯(爲祖後者)을 구별하고전자를방친의후사가된사람으 로 한정했다. 인조가 광해군의 뒤를 이었 다면당연히광해군이그의아버지가되지 만,인조는 조부 선조의 뒤를 이었기 때문 에정원군을아버지로인정하지않으면아 버지가 없게 된다. 결국 그의 주장은 정원 군을아버지로인정하고왕으로추승하여, 선조에서 인조로 이어지는 대통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 지점에 서 박지계가 꺼내든 카드가 부자 사이의 천륜이다. 부모 없는 자식이 있을 수 없으 므로 모든 자식은 부모에게 자식 된 도리 를 다하는 것이 인륜의 출발이다. 인조 역 시정원군의자식이고그러한만큼인조는 정원군에게 자식된 도리를 다해야 마땅하 고 그 도리의 최고 실천은 정원군에게 왕 으로 추존되는 영예를 선사하는 것이다. 이는 효를 인륜의 근본으로 여기는 유교 윤리에 충실한 견해라는 평 가가 가능하 다.인조 대 예제를 둘러싼 김장생과 박지 계의견해차이에대해서는대체로왕조례 (王朝禮)의 특수성과 사대부례(士大夫 禮)의 보편성 사이의 대립이라는 관점으 로 이해되어 왔다. 예를 들어 이성무는 전 자를 “왕통을 중시하는 왕조례의 특수성 을 강조하는 것”으로, 후자를 “왕조례와 사대부례의구별을인정하지않는예의보 편성을강조한이론으로파악했다.이영춘 도 김장 생의 견해를 “제왕례의 특수성을 강조하여 이(추숭론)를 반대하는 고전예 학의 분별주의적 입장”이라고 이해한 반 면에 박지계의 예학에 대해서는 븮가례븯의 보편적 원리를 강조한 것으로 이해했다. 이는추숭반대론이선조와인조의왕통관 계에 강조점이 있었다면 추론은 정원군과 인조의 부자관계에 강조점이 있었다는 점 에서 일면 타당한 점이 있다. 하지만 이러 한 이해는 예의 보편성을 강조한 쪽이 원 종추승으로왕위계승의정당성을확보하 고 이를 통해 군주의 권위를 강화하려는 정치적의도와맞물려있는반면에왕가례 의 특수성을 강조한 쪽이 오히려 군주의 권력행사에제한을가했다는측면을설명 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 대목에서 주목되 는 것이 이현진의 견해이다.그는 “김장생 은오히려이와반대로천하동례의입장에 서 왕례(王禮)와 사례(士禮)를 일치시키 고자한모습을볼수있었고,박지계가오 히려 한강 정구의 영향을 받아 왕자례 부 동사서(王者禮不同士庶)의 입장을 견지 했음을 볼 수 있었다.”고 하여 사뭇 다른 견해를제기했다.박지계가사가에서는주 자가례를 따라 행하고, 왕실 전례 논쟁에 서는왕실의특수성을고려해사가와차별 적인 예를 적용시켰으며, 여기에는 이 논 쟁을통해왕권강화를뒷받침하고자한의 도가 있었다는 것이 그 요점이다. 박지계 는 예론에 대한 깊은 연구와 달리 주자학 의 근본적인 철학이론인 이기심성론을 천 착하지 않았다. 현 실적 근거가 있는 예론 에비해이기심성론은현실적근거가없는 관념적인 논의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다 만 격물물격설과 인심도심설 만큼은 동료 및 제자들과 심도 있는 논쟁을 벌였고, 이 는결과적으로17세기조선성리학의이론 적 성숙 과정에서 큰 관심의 대상이 되었 으며나아가후대학자들에게도일정한영 향을 끼쳤다. 그 논쟁은 의례논쟁 못지않 게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진행됐는데, 이 는그의철학이론과예론사이에관련성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워봄직하다는 것 을 함축한다. 이 논문은 격물물격설과 인 심도심설로 대표되는 그의 철학이론을 살 피고그것이지닌사상사적의미를밝히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며, 나아가 그 이 론 과여론의관계를검토하는것이이차적인 목적이다. 인산서원배향인물잠야박지계선생 삶재조명학술대회 인산서원배향인물을집중조명하는학술대회가다섯차례에걸쳐진행된가운데‘잠야박지계를중 심으로’재조명하고인산서원복원의결의를다졌다. 학술대회후종합토론이 이어지고있다. 박종덕위원장 인산서원복원한걸음더다가가 단종절신 돈 재 박연생, 돈암 박자온, 청백리 이자 문인 아곡 박수량, 교리 김 개, 천문지리에 밝은 백우당 박 상의, 눌헌 박상 지 선생 등 장성 을 대표하는 충 절신이 배향되 어 있는 전남 장 성의 수산사 추 향이 지난 25일 오전 10시 지역 유 림 주 관 으 로 엄숙 봉행되었 다. 이날 제향은 오전 9시30분 제 물봉진을 시작 으로 엄격한 절 차와 의례에 따 라 서예가로 지 역유림을 이끌 고있는김동석(金東錫)집례관의창 홀에 따라 행정공무원으로 청백함으 로명성을떨쳤던김상백(金相伯)필 암서원도유사,고달석(高 銅錫)표충 사총무이사,심연섭(沈演燮)양계사 총무이사순으로각각헌작하고축관 이상옥(李相玉), 진설 강봉구(姜奉 求),봉향송석기(宋碩基),봉로변중 섭(邊仲燮), 봉작 황인관(黃仁官), 전작 류천호(柳天浩), 전의 유기종 (劉基鍾),사준 김옥순(金玉順)유학 자등이각각맡아제례를빛냈다. 제례후가진분포례에서초헌관으 로헌작한김상백도유사는돈재공과 돈암공의절의정신을아곡박수량선 생의 청백함, 그리고 학덕과 유풍을 일으켜문불여장성을이끌어오신선 현의가르침을계승하는소중한자리 가되었다며관계자들이노고에감사 드린다고말했다. 심정섭(沈貞燮) 도유사는 갑자기 기온이 떨어져 쌀쌀함에도 함께해준 모든분들에게감사를보낸다고말하 고수산사는지역의유풍을선도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하였으며, 박길섭 수산사보존회 이사장은 유림 여러분의성원에감사의인사를전했 다. 한편 수산사는 제향에 앞서 임원 진 개편을 하였다. 심정섭 도유사의 연임을결정하고수석장의에김병일, 장의박정래유학자를추대했다. 장성 수산사 추향 봉행 절의븡청백 정신 기려 장성의 육현이 배향된 수산사 추향에 선현의 가르침을 받으려는 김한종 군수를 비롯 지 역유림들이 이른아침부터찾은가운데제향을봉행하고제관들이 기념촬영하고있다. 제물봉진후 초헌관이 단자에 수결하고 있다. 이처럼 수산사 제향은 엄격한 의례 에따라진행된다. 심정섭 도유사 김상백초헌관 박길섭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