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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11월30일 토요일 8 (제215호) 관향조 종친회 1580년 선조가 남긴 선세가훈(先世家訓) 을 중심으로 구당공·소요당공·명헌공 종원 이하나가되어21세기첨단사회에서뒤처지 지않은모범적운영을하고있는구·소·명파 종중(회장 면용) 2024 정총이 지난 11월 8일 오후 7시 경기도 고양시 오금동 재실 영모재 에서종원40여명이참석한가운데있었다. 이날 회의는 국민의례, 선조에 대한 묵념, 선세가훈 낭독,회장인사,유공자 표창,경과 보고 및 감사보고 등 안건심의 순으로 진행 되었다. 박면용 회장은 유인물로 대신한 인사말에 서 금년 오금동과 서상 산소의 정비를 마무 리하는 한편 오금동 선산에 소재한 선조 유 물의 고양시문화유산 등록을 추진하는 사업 을예산에반영하였다고밝히고중중에대한 종원들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하다며 선조의 업적과 뿌리를 일깨워 줄수 있도록형제,자 녀 등의 참여를 적극 독려하여 주시길 당부 했다. 경과보고 및 결산, 감사보고를 원안 접수 하고 2025 회계연도 예산안 또한 원안 가결 한 이날 회의의 주요 내용을 보면 경과보고 에있어△종중‘축기’제작완료및운용은구 소명종중원의자긍심을심어주기위한일환 으로 각 지파이사가 소종중 종원 필요시 회 장에게 요청하여 사용토록 했다. △오금동 선산 소재 유물을 ‘고양시향토문화유산’으 로지정하는건에대해박성호종사위원회위원장은체계적인관 리를위한필요성에대해설명하고조속히추진키로했다. 감사보고에 있어 보고를 한 박진호 감사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그동안문제점을안고있던영농조합법인청산및해산절차를원 만히 정리하고 해산절차가 마무리 되었다며 집행부의 노고를 치 하하고종중내유산에대해문화재추진을위해수고하는종사연 구위원회에박수를보냈다. 2025년 예산안은 △경상예산과 사업성예산으로 구분, △회의 비 교통비는 물가 상승, 실제 발생비용 반영, △세금과 제세공과 금,경조비는편성액초과시자동증액△연관된경비는동일비목 으로 일관성 있게 편성 원안 가결되었다. 특히 이번 예산에는 오 금동 선산 유물 ‘고양시향토문화유산’ 지정과 선영정비, 숭의전 기문제작·봉정에대한예산이반영됨으로서선조현창사업에가 일층박차를가할것으로보인다. 고려태조이하태종,혜종,정종,광종,경종,성종,목종,현종의 위패를모신사당숭의전(崇義殿,경기연천)기문은소요당박세 무선생이1543년(중종36)6월에마전군수로재직할때에숭의전 기를 지어 게액하였으나 1950년 6·25동란시 건물과 함께 소실되 었기에 선생이 마전군수에 제수되어 선정을 베출어 떠났던 군민 이다시돌아왔다는역사적사실등을부각시키기위해서라도기 문복원의필요성이꾸준히제기되어왔다. 정 관 개 정 의 건은 제13 조 3항 ‘각 위 원회는 이사 회의 보조회 의체로서 이 사회에서 위 임받은 범위 내에서 관련 사항을 심의 의결할수있 다.’는 10월 이사회에서 삭제를 의결,이날 회의에서 원안 가결했 다. 임원개선에있어현박면용회장이지난임기동안투명한운영 과선산관리등다방면에서노력한것에찬사를보내며연임하여 더 노력하여 줄 것을 당부함에 따라 연임을 수락하였고, 지파 당 연직인부회장과감사모두가연임되었다. 박면용 회장은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졸업하였으며,해병대 중 위 전역으로 국가관이 투철하다. 한국산업은행(주요 직책 : 검사 부장)을퇴직하여함양박씨대전충남종친회회장,함양박씨잠야 공파종친회장, 인산서원복원추진협의회 총무이사, 2022년 구당 공븡소요당공븡명헌공파종중회장으로지금에이른다. 한편 이날 유공자 표창에는 재무이사와 총무이사 10년 감사 2 년을맡아오며헌신해온수호전재무(현감사)와진호전총무이 사(현 감사)에게 공로패와 함께 부상으로 격려금이 전달되었다. 이날총회에서연임을하게된박수호감사는베트남전참전으로 인헌무공훈장과 국가유공자 증서와 각종 상훈이 이어졌으며,박 진호 감사는 총무이사 재임시 유적탐방 실시, 영모재 신축, 동몽 선습 학술대회개최,오금동 선산 송사 승소하는 등 두 감사는 종 원간의 친목도모, 선조 선양, 종토수호 등 종중발전에 크게 기여 하였다. 9일봉행된시향에는오전9시부터묘소를일일이참배하고영 모재에서문과에정순대부(正順大夫)부사(府使)를지내고이부 상서(吏部尙書)에 증직된 휘 덕상(德祥)公 선조를 위시하여 전 라도관찰사로김제벽골제를중수한병조판서휘습(習),사헌부 감찰휘의손(義孫),종사랑으로증이조판서휘신동(信童),조선 제2대 정종대왕의 외손서 휘 중검(증 판서),구당공(휘 세영),소 요당공(휘 세무), 명헌공(휘 세옹) 이하 8代 19지파 시향이 봉행 되었다.. /박상섭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함양박씨구·소·명파종중정총및시제 봉행 현임원진유임븣투명한운영븡위선사업최선다해 박면용회장(가운데)이박진호감사(左),박수호감사(右)에유 공자표창을하고기념촬영을하고있다. 박용섭부회장 (구당공后) 박용화부회장 (소요당공后) 박용화부회장 (명현공后) 9일봉행된시향에서진태이사가헌관으로헌작하고있다. 함양박씨 동정공(휘 선)의 후예로 성종 25년(1494) 광주에서 처음 보성읍 택촌마 을로이거하여지역의토성으로크게번성 한 회산공 종중의 시향이 지난 12일 보성 군 회천면 객산리 선영의 회산공 묘역과 재사(齋舍)영모재에서있었다. 입향조 회산공 묘제에는 해봉 원로고문 이 집례를 맡았고 초헌관에는 해욱 회장, 보석, 용엽 현종이 아헌과 종헌관을, 해중 현종이 축관을 맡아 각각 맡았으며, 이어 재사로옮겨월계공(月溪公)이하선조제 향은 해봉 고문이 집례를 맡고 이하 정해 진제관이정성을다했다. 회산공(懷山公)은 동정공(휘 鮮)의 손 자이다. 함양박씨 중시조 상서공 휘 선 (善)의 13세(世)이고 제1파 군기소감공 (휘 지문)의 8세(世)이다. 휘는 이량(以 良), 호는 회산(懷山), 1447년(세종29) 광 주에서태어나성종조에사마시에올라지 평과선박과군함의관리를맡아보던전함 사(典艦司) 제검(提檢, 정4품)을 지내다 연산군이 폭군의 근성이 발동되어 국정은 뒤로한채쾌락(快樂)과황음(荒淫)에빠 져있음에 은거(隱居)하며 불취(不就)하 고 후학을 가르치는데 매진하다 중종조에 사림(士林)의 천거로 세자좌빈객이 되고 이조판서에올랐다. 회산공은 성종 25년(1494) 광주에서 처 음보성읍택촌마을로이거하였으며,중종 12년(1517,정축)회산공이 서거함에 회천 면 객산리 자좌(子坐)에 예장(禮葬) 되었 으며,회산공의사패지는묘소에서보이는 곳까지로 보성군 회천면 바다 건너까지로 그 면적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니 세자 의사부로서깊은학문과성품을짐작해볼 만하다. 회산공은아들사형제(태손,만손,천손, 억손)을 두었으나 장남과 차남은 후사가 없고 삼남 휘 천손(千孫)이 또 사형제를 두면서크게번창하게된다. 삼남 휘 천손(千孫)의 자(字)는 경승 (慶承), 號는 월계(月溪)이다. 1488년(홍 치1, 성종19) 태어났으며 진사시에 올라 증손자 성인(지족당공)의 귀(貴)로 인해 좌통례에 증직되었으며,숙부인 여양진씨 와의 사이에 사형제(영견, 영정, 영상, 영 진)을두었다. 월계공(月溪公)의 장남 영견(永堅)은 무과에 올라 만호(종4품)를 역임하였고, 보성읍대야리모령마 을로이주하다. 월계공의 차남 영정(永貞)은 별제(別 提)를 역임하고 손자 지족당의 귀(貴)로 장례원 판결사에 증직되었다. 그의 아들 령( 룔 )의 자(字)는 수옹(壽翁), 호(號)는 운헌(雲軒)으로 예빈시주부를 지내고 아 들의 귀(貴)로 호조판서에 증직되었으며, 슬하에 정부인 창녕조씨와 전주최씨 사이 에 아들 성인,순인, 홍인, 유인,안인 오형 제를두었다. 한편제향전가진정기총회에서해욱회 장은인사말을통해갈수록젊은사람들의 참여가 부족하여 종중 기반자체가 흔들릴 상황으로 보성지역 청장년회는 물론 지금 여기 참석한 종원 모두는 종중의 각종 행 사에 자녀들과 꼭 함께 참여해 줄 것을 당 부했다. 함양박씨회산공종중시향봉행 전남 보성 입향조 휘 이량(以良) 공 이하 선조븣박해욱 회장 뷺다음 향사 더 많은 후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달라뷻 회산공묘역에서참례한제관이함께하고있다.좌측에서두번째부터해봉집례,해욱초헌관,보석아헌관, 용엽종헌관,해중축관순 춘천박씨대종회(회장: 21세손 박상광) 는 춘천박씨 紀元 798년(2024년) 11월1일 (음10월1일) 오전 11시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신북읍 발산리 산2번지 중시조(文 懿公 朴恒) 묘역에서 종친회 임원과 전국 종원들이 모여 추향시제를 봉행하였고 오 후에는경운산청평골에소재하는2世(판 사공 朴 元庇) 묘소에서, 춘천박씨선기공 종친회(회장: 22세손 박경환)는 11월3일 (음 10월3일) 춘천시 퇴계동 우미산 선산 에 있는 사당 숭경사(崇敬祠)에서 종친회 원 113명이 참석한 가운데 각각 추향시제 를봉행하였다. 선기공종중의 경환회장은 시제를 지낸 후 1959년생인 영관, 민영, 민수, 성민, 진 환,제섭종친에게전달하였다. 경로기념품은 65세 이상 종원에게 수여 하는것으로 올해까지 62명에게 수여했다. 후손 육영사업으로 한림대학교 사회복지 학과에재학중인박선주종원에게장학금 1백만원을 전달하였으며 현재까지 장학 금수혜자는105명이다. 시제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문중발전 에 기여한 종원에게는 1백만원의 격려금 을 지급하는데 올해 6명에게 지급하여 현 재까지71명에게지급되었다.올해자녀를 출산한 박제웅 종친과 박제진 종친에게는 출산장려금 3백만원을 지급하였다. 또한 종친회 활성화와 문중발전에 크게 기여한 종원에게는 븮자랑스런 춘 천인상븯을 제정 하여 수여하는데 올해는 족보발간업무에 기여한 22세손 박진환종친이 수상하였다. 춘천박씨는강원도토호성씨33여중수부 도시춘천을관향으로하는유일한씨족으 로자랑스러운문중으로발전하고있다. /춘천박씨명예기자22세손박민군 춘천박씨대종회·선기공종친회시향봉 행 집현전의촉망있는학자들을배출하고, 조선제5대임금문종의스승인문민공(휘 중림)의 높은 학덕과 충의정신을 기리기 위한 지역 유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대구달성군하빈면의충의사추향이지난 10월 25일 순천박씨충정공파 주관으로 종 혁집례관의창홀에따라완순(完淳)종손 이 초헌관으로 헌작하고, 이어 교리공 종 중의 종용(鍾龍), 수찬공 종중의 정근(貞 根)현종이 각각 헌작하고 두규 축관의 독 축으로엄숙봉행되었다. 선생의 휘(諱)는 중림(仲林), 호(號)는 한석당(閒碩堂)으로 문민(文愍)은 시호 이다.조선조에목사를지내시고이조판서 에 증직 된 휘 안생(安生)과 안동김씨 사 이에서태어났다. 1417년(태종17)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423년 문과에 제2인으로 발탁(拔擢)되어 인수부승(仁壽府丞)에 배명(拜命)하고,1 427년(세종9)에 집현전 수찬을 거쳐 중시 (重試)에 합격하여 시강원(侍講院) 보덕 (輔德)과 사간원사간(司諫院司諫)을 역 임하고,이어서승정원승지에발탁되었다 가 1442년 전라도 관찰사가 되고, 1451년 (문종 원년) 경기도 관찰사, 1453년 병조 와 호조의 참판을 거쳐 수문전대제학(修 文殿大提學)이되었다. 1454년(단종2) 예문관 대제학을 거쳐 공조판서에 승진하여 집현전 제학을 겸임 하고이어서이조판서에배명되었다. 집현전은 학자양성과 학문연구를 위한 기관으로왕과신하가경서와사서를강론 하는 경연을 하여 국왕이 수양을 쌓도록 하여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했고 왕 이 될 세자를 교육하는 서연을 하는 곳으 로 세종대왕은 당시 선생의 아들 팽년을 비롯한 성삼문 하위지 등을 상시로 불러 시강하게하고이들의정신과학문을높이 샀다. 세종과문종의유지또한자연스레선생 에게이어지고아들팽년과성삼문하위지 등은 선생의 높은 학문에 동조하지 않을 수없었을것이다. 그러나김질의밀고로선생을비롯한아 들 5형제(팽년, 인년, 기년, 대년, 연년)와 손자(헌, 순, 분) 3代에 걸쳐 9명이 화를 당 하니6월7일과8일이다. 선생의 부인은 안동김 씨로 총제(摠制) 익생(益生)의 따님이고, 계배(繼配)는 신 평이씨로 사제감령 득배(得培)의 따님이 다.슬하에5남1녀를낳았다. 큰아들팽년은형조참판을역임하고후 에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시호는 충정(忠 正)이다. 둘째 인년(引年)은 교리, 셋째 기년(耆 年)은 수찬으로 호당에 뽑히고 넷째 대년 (大年)은 박사(博士), 다섯째 영년(永年) 은 검열(檢閱)이다. 딸은 승지 채치의(蔡 致義)와혼인하였다. 그리고 이날 제향에는 이들 4형제의 후 손들이유림들과함께높은충절과학덕을 기렸다. 순천박씨문민공·육신사추향봉행 단종복위사건은바로한석당박중림선생의학맥에서비롯,성삼문·하위지등 무안박씨수서공종중은지난10월30일 봉화군봉화읍적덕리소지골소재입향조 수서박선장선생의묘소에서후손들이모 여 시제를 봉행하였다. 시제에는 집례에 효락(13세) 초헌관 정환(15세 종손) 아헌 관 금덕(12세) 종헌관 태환(15세. 지역 종 친회장) 축관 일훈(15세)이 분정을 받은 대로봉행하였다. 이어바로뒤에자리한수서선생의모친 이신 신안주씨(몽화부인)의 묘로 이동하 여제를올렸다. 수서공 박선장은 송파공 박전(호조정 랑)과 신안주씨(1518-1618)사이에서 1남 3녀의 외아들로 1555년(명종 10)5월 11일 영해부 익동에서 태어나 남몽오 선생에게 글을 배웠으며, 14세(1568년, 선조1)에 스 승인남진사의장녀(1550-1638)와혼인하 였다. 모친의 뜻에 따라 51세에 과거를 보아 예안헌감, 경상도 도사를 지냈으며, 증 도 승지, 증 이조참판에 증직되었고, 구만서 당(현서원)을지어후학양성에힘썼으며, 오륜가,십물잠등170여수의시를남겼다. 어머니 신안주씨는 아들 교육을 위하여 울진친정에서10세외아들을대리고12령 을 넘어 이곳까지 찾아온 맹모삼천지교에 비길만한여걸이셨다. 남편송파공이당쟁에휘말려44세의나 이로 급서하자 서울에서 영해부 여현까지 천리길을운구하여상례를치루고삼년상 을 마친 뒤 아들 수서공의 교육이 걱정되 어울진친정으로이사하여오라버니께청 학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송파공이 꿈에 나타나 “영천(榮川,지금의 영주)땅 산단화가 피 는 마을을 찾아가 아들을 교육시켜라” 는 당부를 받고 10살 난 외아들 수서를 대리 고 영천군 곶내(지금의 봉화군 봉화읍 화 천리)를 찾아 삼송 남몽오 선생에게 아들 을 교육시킴으로써 증손자까지 4대에 걸 쳐연속하여과거에급제토록하여맹모삼 천지교의표본이라추앙받았다. 신안주씨의 교육열은 4대 과거 급제로 이어져 남편 송파공에 이어 아들 수서 박 선장(水西 朴善長, 1555-1616).손자 박경 (東川 朴璥,수서의 장남, 1573~1654)은 인 조15년삼전도의굴욕으로막을내린병자 호란의 성하지맹(城下之盟,인조가 성아 래에서 항복함)이후 통곡하며, 상춘사(傷 春辭)를짓고두문자회 (杜門自晦)하였고, 서유가(鋤 착 歌)로 유명하다. 손자 회이당 박한(悔易堂 수서의차남,1576~1652)1 607년(27세) 문과 급제하여 예안현감, 울 진현령, 서천군수, 풍기군수, 선산부사 판 교(승문원정3품)를역임하고임진왜란에 혁혁한공을세워원종훈신으로등재되었 고,과천 박로(過川 朴 僚수서의 삼남,159 0~1671)는 수직(壽職)으로 첨추(僉樞)에 이르고,증손자 초당 박안복(草堂 朴安復, 회이당의 차남, 1601~1652)은 1639년 38세 에 식년문과 2등으로 급제하여 예조좌랑 을역임하였다. 이밖에도 많은 석학들이 배출됨에 따라 신안주씨의 현명한 선택은 지금에 우리들 을뒤돌아보는기회와교훈이될것같다. 무안박씨수서박선장선생묘제봉행 봉화꽃내마을입향조븣4대과거급제로이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