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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10월31일 목요일 8 (제214호) 특 집 안락재는 장수군의 ‘2024년 도지정문화유산화산사보수정비공 사’일환으로 7월부터 3개월에 걸쳐 안락재의 서카래와 기와작업, 담장,바닥 마사토 작업 등을 실시함으로서 산뜻하게 정비를 마쳤 다.그리고19일오전11시화산사에서황병원집례의창홀에따라 최훈식 장수군수,최한주 장수군의회 의장,한병태 문화원장 순으 로 헌작하고 권용택 축관의 독축으로 갑진년 제향을 봉행하고 화 산서원 강당인 안락재에서 기념식은 육동수 장수향교 전교를 비 롯한 유림과 지역주민,충주박씨 참의공파 및 판서공파 종원이 대 전과광주에서대거참석하는등100여명이참석한가운데박수섭 서원 유사의사회로기념사 및축사,특강,제언,토의순으로 진행 되었다.서원 본래의 기능인 강학에서는 장원기 박사(원광디지텔 대학교관광학과 겸임교수,관광학 박사)의 ‘안재 박지견 선생’을 주제로특강이이어졌다. 양옥길 화산서원 원장은 기념사에서 전날부터 내린 비로 걱정 을 많이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비가 그쳐 후학들의 홍복(洪福)이 아닌가싶다고말하고창건520주년을화려하게해야하는데제반 사정과 배향된 선조님의 청백함 등을 고려해 축소하여 조촐하게 이루어진 점 양해 부탁드린다며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을 당부 드 린다고말했다. 최훈식장수군수는축사를통해화산서원은장수군에현존하는 가장 오래된서원으로그런 만큼장수군에서가치가 가장있는 서 원으로 저희 군에서는 이번 문화재 보수를 하였는데 앞으로도 잘 보존해서 장수군의 자랑스러운 서원으로 남을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일것이라고밝혔다. 최한주장수군의회의장은화산서원의정신적인상(象)은우리 전통과문화를보존하고또520년동안안락재에서발원하는학문 과도덕적정신은우리에게영감을주고더욱발전할수있도록하 기위해문화자산지키기에최선을다할것이라고말했다. 한병태문화원장은화산사가전라북도문화재자료34호로지정 (1984.04.01 지정)되어 있는데 이를 문화재로 승격될 수 있도록 노 력하겠다며향후각오를다졌다. (원문) 충주박씨 가문의 장수 입향조 파은 박수기 선생은 1429년 세종11년생 으로 계남 기산에 거주하면서 50세에 장 계 노평천에 언덕위에 자락정을 짓고 후 학을양성하였습니다. 저서로는 태극도설, 이기강설, 심성분 설등다수가있었고,특히족부족시28장 ( 본보 2024.2. 4면 제206호 참고)은 시 문 학사상최초의기법으로파격시(破格詩) 라고도하는독특한문체입니다.신라,고 려,조선2천년간최고의도인이라불리는구봉송익필(龜峯宋翼 弼:1534~1599)선생이지은족부족시20음보다약100여년먼저지 어졌으니선생의학문과덕행을알수있습니다. 이러한 파은 박수기 선생의 차자 안재 박지견 선생은 1504년 연 산군 10년 여러 차례의 사화를 목격하고 천문례 습독관을 사직하 고화산에내려와안락재를지어후학을양성하였습니다. 주자는백록동서원과악록서원을만들어후학을양성하였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소수서원(紹修書院)을 열어 후학을 양성하였으 며, 장수에서는 박지견 선생이 안락재를 지어 후학을 양성하였으 니 이는 주세붕 선생이 세원 소수서원 보다 38년이 빠른 시기이고 이는장수군최초의서원이되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의 뜻은 앞에서 독축하였듯이 븮선인을 빛내고 후 학들의 학문 길을 열어주는븯 광전계후(光前啓後)를 실천하는 것 이었습니다. 맹자는 일찍이 군자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니라(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 註1 참 조)하였으니안락은이러한군자의삼락을실천하는마지막장소 가되는곳입니다. 그리고공부하는학생들이경계하고지켜야할충군,효친,부부, 붕유, 안빈, 교제자, 종족의 8덕목에 관하여 계 학도문(戒 學徒文, 註2 참조)을 지어 가르쳤으니 이는 주자의 성리학 기본 이론으로 도학에근거하고있습니다. 계 학도문은 율곡선생의 문체와 너무 흡사합니다.이는 조선 초 포은의 학통을 이어받은 야은 길재, 김숙자, 김종직, 정여창, 김굉 필,어언적,조광조,그리고율곡으로이어지는주자의도학사상과 일치하고있으며,율곡,우계성혼,중봉조헌,눌재박상,사암박순 등 당시의 제현들이 이곳 안락재를 방문하였으니 안락재는 가히 장수군의명소였습니다. 선생은 안락재를 지으시며 기문에서 “고인은 낙(樂)으로 삼는 것이하나뿐이아니다.사물을취하여즐거워하는이도있고,혹도 (道)에 뜻을 두어 즐거워하는 이도 있으니 그 즐거워하는 취미는 비록다르나그의는하나이다.”라고하여안락재라이름하였으니 이는 효의 마지막인 입신양명(立身揚名) 보다 더 중요한 군자의 삼락(三樂)을지키기위함이었을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선생의 뜻을 받들어 장수의 문화적 정체성을 새롭 게 만들어 가야합니다. 조선 초 세종실록지리지를 살펴보면 장수 군의 인구는 320여 호에 812명의 인구가 있던 조그마한 고을이었 습니다.그때최초로장수에유배를내려오신백장선생은유천언 덕에 청심정을 짓고 손녀사위가되는김남택,송보산 선생님과 함 께학문을논하였습니다. 그리고 50년 후 김남택 선생의 손녀사위가 되며 박지견 선생의 부친이 되시는 파은 박수기 선생이 장계에내려와 자락정을 짓고, 선생의 아드님인 박지견 선생이 악락재를 지어 후학을 양성하신 것입니다.이러한 선생의 도덕정신은 이후 내동의 근수루,장수에 창계서원이 세워졌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계남에 흥학당이 세워 지는계기가되니520년전안재박지견선생님이만드신안락재의 역할은장수유학의기본이되는곳이라할수있는곳입니다. 뷺淵源之學(연원지학) 明哲之志(명철지지) 光前後啓(광전후 계)士林仰止(사림앙지)즉 학문의 근원을 통찰하여 환하게 밝게 밝히려는 뜻을 가지고 선인을 빛내고 후학을 열어주었으니 모든 사림의추앙을받으셨습니다.뷻이것이오늘선생을기리는축문의 요지가되는것입니다. 주(註)1- 孟子의君子有三樂(맹자의군자유삼락) 君子有三樂 而王天下不與存焉, (군자유삼락 이왕천하여존언) 뱚父母俱存兄弟無故一樂也,(부모구존형제무고일락야) 仰不愧於天 俯不칵 於人 二樂也,(앙불괴어천 부불작 어인 이락 야) 得天下英才而敎育之三樂也,(득천하영재이교육지삼락야) 맹자가말씀하시길군자에게는세가지즐거움이있는데천하에왕노릇하는 것은이에들어있지않는다.부모님이다살아계시고형제가무고한것이첫번째 즐거움이요.우러러하늘에부끄럽지않고굽어보아세상에부끄럽지않은것이 두번째즐거움이요.천하의영재를얻어서교육하는것이세번째즐거움이다. 주(註)2,계학도문(戒學徒文)-학도(學徒)를경계하는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반드시 그 직책(職責)을 주게 되니 그 직책이아니면사람이될수없다.부모에게마땅히효도하며임금 에게 마땅히 충성하며 부부간에 마땅히 분별하며 형제간에 마땅 히우애하며 벗에게 마땅히믿음 있게하며 친척에게 마땅히화목 할지니이것이인생의직책이다. 만물(萬物) 중에 귀한 것은 사람이니 무엇 때문인가? 인도(人 道)학문(學問)이있음이니학문은마땅히할일에마음을바르게 하고수양(修養)할뿐이니학문(學問)에어둡고인도(人道)에벗 어나면마음바닥에띠가막히고식견(識見)이미망(迷茫)하여안 개 속 햇빛 같아 밝히고 저 하나 되지 않는다.이같이 하여 만물에 귀할 수 있겠는가?비록 인형(人形)이 있으나 어찌 금수(禽獸)와 다르랴모름지기너희들은학문에힘쓰고인륜(人倫)에밝게하며 부지런하고의젓하며수양하고뜻을세워시속(時俗)에서벗어나 면현인(賢人)되기어렵지않으며성인(聖人)되기어렵지않으리 라 대개 중인(衆人)과 성인이 그 본성은 같으니 옛 허물을 버려 타 고난성품을회복하고개연(慨然)히분기(奮起)하여이뜻을확수 (確守)하여 조금도 더하지 않고 모든 선(善)에 족(足)하게 되면 중인(衆人)이성인(聖人)에자기(自欺)함이이것이다. 맹자(孟子)가 말씀하시되 뷺순(舜)은 누구이며 나는 누구인가뷻 하시고 안연(顔淵)이 말씀하시되 뷺순(舜)은 누구이며 나는 누구 인가 노력하는 이는 이같이 된다뷻 하시며 성한(成?)이 말하기를 뷺저도 장부(丈夫)이며 나도 장부(丈夫)인데 내가 왜 저를 두려워 하리요뷻하니 이는 허물을 고쳐 뜻을 세우는 것을 말함이다. 만약 뜻이 성독(誠篤)하지 못하여 포기해 버리고 그대로 지나쳐 고친 듯마는듯하고오늘내일미루면세월이유유하여죽음에임하여 슬퍼한들무엇하리요원(願)컨대학도들은생각을여기에둘지어 다. △임금께충성(忠誠)하는것 임금 섬기기를 어버이 섬기듯 하여 어버이 섬기는 정성으로 임 금을 섬기며 어버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임금을 사랑하면 저절로 임금께향(向)하는충성이있으리라옛말에이르기를충신(忠臣) 을 효자(孝子)의 문(門)에서 구한다 하니 이것이 이른바 충효(忠 孝)가마찬가지이니능(能)히그어버이를사랑하는이는능히그 임금을사랑하는것이다. 임금을 덕으로 인도하며 직언(直言)으로 항의(抗議)하여 마땅 히 삼사(三事)로 국사(國事)에 전무(專務)하면 인신(人臣)의 도 (道)를 다 함이니 삼사란 무엇인가? 청(淸)과 신(愼)과 근(勤)이 다. 또 말하기를 뷺도끼와 자귀를 맞아도 바르게 간(諫)하며 솥과 가마에삶아도할말을다한다뷻하니생(生)과사(死)에곧게하는 것을 충신(忠臣)아라 이르니 한갓 옥백(玉帛)만을 탐하여 신하 (臣下)의자리만꾀하고공교한말과아첨하는얼굴로군부(君父) 에게 아뢰어 국정(國政)을 어지럽히며 왕장(王章)을 훼손(毁損) 하면 하늘을 속일 수 없고 천죄(天罪)을 도피(逃避)하기 어려워 천추(千秋) 아래에 사필(史筆)에 전(傳)하여 아무는 충성스러웠 고,아무는곧았으며아무는간사하였고아무는굽었다하리니어 찌엄(嚴)하지않으며어찌두렵지않으랴 △부모(父母)에게효도(孝道)하는것 시경(詩經)에 이르되 뷺아버지여 날 낳으시고 어머니여 날 기르 시니이덕(德)을갚고저할진대넓은하늘처럼끝이없다뷻하고또 말하기를뷺성명혈육(性命血肉)은다어버이의소유(所由)이니숨 을 호흡(呼吸)함과 기맥이 상통(相通)함이 이 몸이 나의 사물(私 物)이아니고이에부모(父母)의남긴기운인까닭에슬프다부모 여날낳으시기를수고롭게하셨다.뷻하였다. 만물에가장귀한것은내몸이고내몸은이에부모의끼치신바 이니 비록천하의물건을 다들더라도이한몸을바꾸지 못할진대 부모의 은혜 마침내 어떠한가 세월이 쉬임 없어 오랫동안 어버이 를 섬길 수 없으니 인생(人生)백세(百歲)에 섬길 날이 얼마인고! 까닭에남의자식된이모름지기정성과힘을다하여행여불급(不 及)할가할지니증자(曾子)말씀하시기를뷺나이이미늙어지면비 록 효(孝)하고저 하나 누구를 위하여 효(孝) 하리요뷻 하시니 효 (孝)하는이 마땅히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하여 눈물 흘리게 할 것 이고또말하기를고인시(古人詩)뷺옛사람이하루봉양하는것을 삼공(三公)으로 바꾸지 않는다뷻하니 이른바 날을 아끼는 것이 이 것이다. 범인(凡人)의 부모 은혜를 알지 못하고 어버이에게 효도 할사람이심히적으니아깝도다.어버이를섬기는이그마음을즐 겁게하여뜻을즐겁게하고한일한행동을감히제멋대로하지말 고 반드시 물어 행(行)할지니 만일 할만 한 일을 부모(父母)가 허 락지 않으시면 반드시 기운을 내리고 낫빛을 화(和)하게 하고 소 리를부드럽게하여고(告)하여허락하신뒤에행할것이다. 부모의 사랑하는 것을 마땅히 사랑하고 부모의 공경하는 것을 마땅히 공경하여 일상생활에 잠깐이라도 부모를 잊지 않은 뒤에 야만스스로어버이에게향하는정성이있으리라 매일 날이 새려하면 세수하고 머리 빗고 의관(衣冠)하고 부모 계신 곳에 가서 따듯하고 추움과 안부(安否)를 묻고 날이 저물면 침소(寢所)에나아가요와돗자리를펴고따뜻하고서늘함을살피 고물러가기를명(命)한뒤에물러나며힘껏맛있는공물(供物)을 얻되 반드시 몸소 맡아 친히 비찬(備饌)하여 어버이 입에 맞게 하 며출입기거(出入起居)할때반드시조심스레부호(扶護)하며부 모 병환이 계시면 감(敢)히 곁을 떠나지 말고 마음으로 금심하고 낫빛이 막혀 남은 일을 놓아두고 의사를 맞아 처방(處方)을 검토 하고 약이(藥餌)를 골라 맛보며 희롱하여 웃지 말고 잔치하여 놀 지 말고 다만 증세(症勢)를 살펴 회복하기를 기약(期約) 할 것이 다. 밖에 나갈 때는 반드시 절하고 사례하고 들어오면 반드시 절하 고 뵈이며 부모 앉는 곳에 아들이 감히 사객(私客)을 맞지 못하며 말 오르내리는 곳에아들이 감히오르내리지못하는것은 감히스 스로부모에의비(擬比)하지못함인것이다. △남편과아내 남편된이화(和)하여의(義)로분별하고아내된이순(順)하여 정(正)으로이어례(禮)와경(敬)을잃지않은다음에가도(家道) 가 서 진다. 지금 사람들이 부부(夫婦) 잠자리에서 많이 정욕(情 慾)을 놓아 그 위의(威儀)를 잃다가 하루 아침에 문 듯 서로 위엄 을 세우려 잘되어지지 않는 것이다. 또 부부(夫婦) 서로 화순(和 順)하면 제가(齊家)하기 어렵고 내외(內外)뜻이 다르면 모든 일 이 다 풀어지리니 례(禮)는 순(順)하기만 하지 못할 것이다.조심 스럽게두렵지않은가 △형(兄)과아우 부모(父母)의 한 몸을 같아 받아 몸을 나누니 형제(兄弟) 한 몸 같은지라어찌피아(彼我)의사이가있으랴음식의복과걱정되는 일즐거운일들을다마땅히함께할지니설사형제(兄弟)가혹배 부르고 혹 주리며 혹 따뜻하고 혹 추우면 이는 한 몸의 팔 다리가 혹병들고혹건강한것이다. 만일선행(善行)이있으면진심으로기뻐하여서로힘쓰게하고 불선(不善)한행동이있으면마땅히정성껏충간(忠諫)하고이치 로 깨워 감오(感悟)하게끔 할 것이요 낫빛을 붉히고 말을 거슬러 화기(和氣)를잃지말도록할것이다. △ 벗과 벗 사이 벗을 가리되 학(學)과 선(善)을 좋아하는 이를 취하여 반드시 친근히통정(通情)하여더불어동처(同處)하고또단정한사람을 취하되 나보다 나은 이를 가려 신(信)으로 책선(責善)하며 道로 忠告하여 오래 갈수록 공경할 것이요 불선(不善)한 자(者)는 그 악(惡)을 말하지 말며 그 루(陋)를 들추지 말고 범연(泛然)히 득 하고공경스레멀리할것이고만일서로아는자(者)는다만안부 인사만하고다른말을접(接)하지않으면자연히멀어져음식(飮 食)을 많고 좋은 것을 숭상하지 말고 마땅히 정결하게 하면 비록 도시락밥표주박국물이라도다좋은취미가될것이다.(음식(飮 食)위에빠진글이있는듯하니이것은분명다른말이다.) △가난에편히하는것 대개군자(君子)도(道)를걱정할것이고가난을걱정하지않을 것이니 다만가난하여살아갈 수없으면 궁핍을구제할계책을 생 각할 따름이니 기갈(飢渴)을 면(免)하고 한서(寒暑)를 갖추면 이 또한 족(足)하다.옛날 이른바 좋은 밭 만경(萬頃)이라도 하루 먹 는 것은 이승(二升)이고 큰집 천간(千間)이라도 밤에 눕는 것을 팔척(八尺)이니 어찌 반드시 죽은 후(後)의 자손(子孫)계획으로 마음을 쓰고생각을 태워죽도록부지런히 이익만 추구하랴옛 사 람이 자경(自警)하는 속담이 있으니 말하기를 뷺누에는 늙어 고치 만짓고몸도가리지못하며벌은주려꿀만더움게하여남의이익 만제공하니나이늙어집을걱정하는이는두벌레처럼헛고생만 하는것과같다.뷻하니진인달사(眞人達士)의천명을아는말이다. 다만 우리 집이 본래 한사(寒士)로 가난하게 살고 검소함을 힘 쓰다 일조(一朝)에 비분(非分)의 은혜로 외람되게 훈반(勳班)에 참여하여 영지(領地)를 주시니 영화(榮華) 이미 극진하고 품수 (品數) 이미 높았는데 희비(喜悲)와 흥체(興替)는 천지(天地)돌 고 도는 상리(常理)이니 길이 자손(子孫)의 부귀(富貴) 향유(享 有)하기를감히바라지못할것이다. 이런까닭으로산업(産業)을힘쓰지아니하고 급(急)한대로써 버리기만 힘쓰는 자(者)는 후손의 재화(災禍) 부를 것이 두렵지 아니한가? 원(願)컨대모든학도는가난으로분수(分數)에편히하면만족 (滿足)을 알아 또한 즐거울 것이니 만족을 알지 못하는 자는 비록 부귀(富貴)라도또한걱정인것이다. △자제(子弟)를가르치는것 자제(子弟)를 가르치되 마땅히 예법(禮法)으로 인도하여 어려 서부터크도록서책(書冊)필묵(筆墨)밖에기타잡기(雜技)와음 란한말은앞에가까이말고입에걸지말아술과풍악을익히지말 며놀로다니지말게하고넓게배우고뜻을독실하게하며간절히 묻고생각을가까이하면인(仁)이그속에있으리라 지금 세속(世俗)을 보건대 부모가 그 아들을 잘 가르치지 못하 고 아들이 그 가르침을 잘 받지 못하여 유희(遊戱)하는 장소에 불 러모이며시끄러운 거리에 술취해거꾸러져몸을 버리기를 오물 (汚物)같이 하고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니 이는 자식 없는 것만도 못하다.어찌슬프지않으며경계할일이아니랴 △ 일가 간 무릇 동종(同宗)의 일가 그 처음은 한사람의 몸이니 한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백지천파(百支天派)가 모두 나의 한 몸인데 어찌 사랑하지 않으리요 쉼 없이 상대(相對)하여 정(情)을 토로(吐露) 하며선(善)과악(惡)에친절하게깨워서로반드시감오(感悟)하 게끔 하고 비록 촌수를 따지지 않는 먼 일가라고 그 항열(行列)을 따라아재형을찾고친절히접대하는데에소홀함이없게하고이 성(異性)의 친척에도 또한 같이 할 것이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안락재의 활용방 안에 대해 집중토의가 이루진 가운데 계 남 향약 장을 맡고 있는 양남철 유현(儒 賢, 서원 유사)은 이 자리에서 서원의 향 후 운영방안과 관리에 대해 제안을 하였 는데그요지는다음과같다. 뷺계남향약(溪南鄕約)이 면면히 이어 오고 근수루(近水樓)와 흥학당(興學堂) 이전통윤리를밝혀온것은이미반천년 (半千年)전(前)에화산서원이창건되어 맥(脈)을이어준덕(德)이라고봅니다. 그러나오늘날강상(綱常)은쇠퇴하고인구도소멸되어계남초 ·중학교가폐교위기에놓여있습니다. 장수군의 관문이 있는 본 서원의 주변을 깨끗이 정비하여 말끔 한 기숙사를 짓고 도시 유학생을 유치하여 계남학교에 등교 시키 고, 하교하면 한 시간씩이라도 서당공부를 시킨다면 서원도 재건 되고학교도살아나고윤리도회복되어일석삼조(一石三鳥)의효 과를 얻을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서당교육은 저희 향약(鄕 約)에서 맡을 수 있고, 돌봄 교사를 채용하여 학생을 보살핀다면 부모님도믿고유학을시킬수있을것입니다.뷻 이에많은사람들이의견을내놓았다.븮아름다운서원향교만들 기일환으로추진하는공모사업을븯,븮서원을인성교육의장으로함 께만들어가자븯등다양한의견이개진된가운데최훈식군수와최 한주 의장,한병태 원장 등도 최선을 다해보다며 동참하여 기대해 볼만하다. 화산서원안락재창건520주년 안락재창건520주년을기념하는기념식과제향이지난19일가진가운데제관과서원관계자들이기념촬영을하고있다. 화산서원의 안락재는 1504년 천문례(天文隷) 습독관 (習讀館)을지낸안재박지견선생이여러차례사화를 목격한 후 사직하고 화산에 내려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세웠다.주세붕선생이1542년백운동에세운소 수서원보다38년이빠른셈이다. 안락재는당대의문인이자학자인율곡이이,중봉조 헌,우계 성혼,고봉 기대승,서하당 김성원 등이 교류 하며남긴 시문이전해져 오고있어안락재의 위상을 짐작해 볼만 하다. 안락재를 지어 후학양성을 해온 안재 선생은 학도들 을가르침에△임금에충성하는것△부모에게효도 하는 것 △ 남편과 아내 △ 형과 아우 △ 벗과 벗 사이 △ 가난에 편히 하는 것 △자제를 가르치는 것 △ 일가 간 등의경계하는글계학도문(學戒學徒文)를지어가르 쳐 현세의 우리들에게 교훈으로 남겨진다.특히 안락 재는장수유학의기본이되는곳이라할수있다그리 고안락재뒤편에세워진화산사는박수기·박상·김정 ·박지견·박순·박지효 등 여섯 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 는사당이다.이들은모두조선중기이전의문신과유 학자들로서 성품이 곧고 절의가 빼어난 분들이기에 창건520주년은더욱의미가깊다.이에기념식,특강, 제언 등 행사 전반과 이해를 돕기 위한 주(註)를 달아 함께소개해본다. 창건520주년기념식및제향 최훈식초헌관이진설을점검하고있다. [특강]장원기교수의안재(安齋)박지견(朴枝堅) 장원기교수 제언과토의 화산서원전경 박수섭유사 화산서원은본보2017년10월호6면에소개한바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