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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6월30일 목요일 8 (제186호) 기획·관향조 종친회 ‘코로나19’는우리사회를급속도로비대면사회로전환하면서 종친회에는직격타를맞은듯침체되어기로에선듯하다.핵가 족화 되면서 직계 가족마저도 얼굴보기 힘든 세상이라고 하는 데하물며원대(遠代)의일가모임은더욱더어렵다.설상가상2 년여를회의한번갖지못한종중이허다하여집행부구성을어 떻게해야할지막막하기만하다며하소연하는종중도있다.흔 히들 인생이라는 굴레를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한다. 즉 ‘인 생에 있어 길흉화복(吉凶禍福)은 항상 바뀌어 미리 헤아릴 수 없다’는 의미이다. 또 다른 사람은 위기는 기회라고 말하기도 한다.우리종친회역시코로나19를우리가이겨냈듯침체된종 친회 부활을 위한 기회라 생각하고 새로 시작하듯 현명하게 대 처한다면곧옛영화를찾을수있을것같다.그리고‘코로나19’ 에도 뿌리를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다. 구보(舊譜)나 가 승(家乘) 그리고 막연하게 이름 석자 갖고 뿌리를 찾으려는 사 람들이 있어 안타까움을 주는 사례도 있다. 얼마 전 손씨 성을 가진 여성분이 신문사로 찾아온 일이 있다.아버지가 유언으로 남긴뿌리를찾기위해서다.경주에서살았던조부는고향을떠 나구리시에정착하였고,뿌리는박씨라는것이다.구보를가지 고 있었는데 위아래도 없고 중간부분만 있는데 막막하였다.그 래도 찾아온 분의 집념과 의지는 대단해 결국 집안을 찾아주고 법원에개성(改姓)신청을하여박성(朴姓)을찾도록하였다. 밀성박씨 충헌공파 중추공 이곡문중 또한 어렵게 뿌리를 찾아 그기쁨을함께나누고자하였다.이에지난17일경기도가평군 북면이곡마을찾았다. 이곡문중은 밀성박씨 충헌공 후 판서공파 봉사공의 후예다. 일제 강점기와 6·25 동란 이전에는 왕래가 있어 종원들간 친목 을 도모하며 여느 문중처럼 위선사업을 활발히 전개해 나갔다. 그러나 6·25 동란에 몇몇 어른들이 화를 입으면서 흩어졌고 설 상가상종중의원대또한잃고만것이다. 이에 종중의 유사를 맡고 있던 기천 현종과 집안의 동생 기 명, 기천 현종의 아들 필호 군은 지역의 종친회에 열심히 나갔 고, 한편으로는 전국의 유명 도서관을 드나들며 흔적 찾기에 나섰다. 그리고 2012년 선조의 묘역 필지에 대한 옛날 토지조 사부를 열람하게 되면서 실낱같은 희망을 얻었다. 당시 토지 소유자가 서울 할 아버지라 불렸던 윤호(允浩, 1870 ~?)公이었다. 그리고 가평군 종친회 창립총회 에서 그동안 가깝 게 지내던 본보 지 희 명예기자에게 사실을 말하고 도 움을 청했다. 지희 기자는 우선 종중 의 족보를 샅샅이 뒤졌고 급기야 192 4년 갑자보에 수단 이 접수되어 등재 되었으나 이후 6·2 5 동란을 거치면서 누보되어 후손을 찾지 못해 절손된 상태임을 알았고 곧바로 기천·기명 현종과 선조 묘역 의 지번과 좌향이 족보에 수록된 내용과 일 치함을 확인하여 뿌 리를찾게된것이다. 이에 기천 현종은 그동안의 서러움과 새롭게 맞게 되는 기쁨 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알 수 없을 것이라며 명문거족의 후예이면서도 남들 앞에 나가지 못했던 것을 말로는 표현 할 수 없었다며 지희 기자와 명환 청년회장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 다고말한다. 중추공 휘 정환(挺煥)은 밀성대군의 13세(世) 지손(支孫) 충헌공의 20세(世)이다. 상계를 보면 밀성대군(密城大君 휘 언침)의 10世 支孫(시조 39世孫) 太師公 휘 언부(彦孚)는 고 려 문종(1047년 丁亥) 때 문과에 급제하여 최충과 함께 태사 (太師)를 지냈고 중서령 문하시중 도평의사를 역임하였으며 밀성부원군으로 피봉 되었는데 곧 충헌공의 5대조가 되고, 태 사공께서 아들을 둘 두었는데 맏이는 효신(孝臣) 차는 의신 (義臣)이다. 고려 인종은 양 형제를 효의양신(孝義兩臣)이다. 고려주석(高麗柱石)이라 부르고 동방대성(東方大姓)이란 어 필 넉자를 하사 했다. 태사공의 둘째아들 諱 의신(義臣)은 당 대의文章家로공부상서(工部尙書)를지내셨다. 의신의 장자 원(元)은 사문진사공파 파조이고 차자 윤(允) 은 호연(浩然), 효연( 然)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장자 호연(浩 然)의 현손 중미(中美)는 밀직부원군파조,차자 효연( 然)은 충헌공의조부가된다. 충헌공의 부친의 휘(諱)는 지영(之塋)이며 고려 고종조에 정시 갑과에 합격하였으나 뜻이 청고하여 벼슬에 나가지 않고, 일찍이 중국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해동시선(海東詩仙)이라고 칭하였다한다.모친은영양이씨(永陽李氏)이다. 충헌공의 휘는 척(陟)으로 고려조에 내부시승(內附侍丞)에 이르고 순충동덕찬화공신 삼중대광(純忠同德贊化功臣 三重 大匡)에 밀성군(密城君)으로 봉(封)해졌으며, 추은(推恩)으 로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의 은총이 더하여지고 시호 (諡號)는충헌(忠憲)이다. 사패지(賜牌旨)를 하사받으니 옛 밀주(密州) 수산현(守山 縣:현 밀양시 하남읍)에 있으며 자손이 세세로 계승하여 녹을 받아 왔다.충선왕(忠宣王)이 태자일 때 정가신 븡민지 등과 함 께 원(元)나라에 가서 삼년을 지낼 제 공(公)도 함께 수행하여 김심과 더불어 심양(瀋陽)에서 높이 뫼시는데 힘쓰고 충선왕 을 모시고 돌아와서 즉위하였으나 왕유소와 송방용이 정사를 마음대로 전횡하므로 공(公)이 의논하여 이들을 주살하니 이 에 비로소 충선이 국정을 전담하게 되어 조야가 서로 가까워지 고태평하게되었다. 충헌공은 부인 아림군부인(鵝林君夫人) 경주이씨(慶州李 氏)와의 사이에 아들 성진(成進)을 낳으니 문과에 올라 조현 대부(朝顯大夫)로 흥위위(興威衛) 정용장군(精勇將軍)에 협 찬공신(協贊功臣)으로 황증문하평리(皇贈門下評理 종2품)에 이르렀다. 특히 고려 충렬왕 6년 군사 25,000명을 거느리고 왜 적을정벌한일은고려사와밀주구지에기록되어전해진다. 손자 판전교시사의 휘는 원(原)으로 충숙왕조(忠肅王朝)에 벼슬이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에 이르고 규의선력공신(揆 儀宣力功臣)으로 밀성군에 봉해지고, 슬하에 아들 윤겸(允 謙),윤문(允文),윤무(允武)삼형제를두었다. 장남 윤겸(允謙)은 중랑장(中郞將)으로 아들(휘 連), 손자 (휘 강)에 이르러 무후(无后)이고 차남 휘 윤문(允文)은 밀주 의 풍각화산(현 청도군 풍각면 화산) 본가에서 출생하여 충숙 왕 원년(1314년)에 급제하여 삼중대광 보문각대제학(寶文閣 大提學)에 이르고 밀성군(密城君)에 봉해졌다.부인 해양군부 인 광산김씨와의 사이에 슬하에 아들 6명을 두니 세칭 육남대 가라불러지며크게번성하였다. 대제학공 윤문(允文)의 장남은 밀양(密陽)으로 전법판서 (典法判書)를 역임하고 봉순대부판전교시사(奉順大夫判典校 寺事)로 밀산군(密山君)에 봉작(封爵)되었는데 곧 중추공의 16대조가되고판서공파파조이다. 판서공(判書公) 휘 밀양(密陽)의 호(號)는 낙촌(駱村)으로 고려 충정왕(1349~1351)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전법판서 (典法判書)와 봉순대부(奉順大夫)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를 역임하였고 밀산군(密山君)에 봉해졌다.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선생과교류하며주고받은시문(時文)이전해진다. 판서공의 아들 경의(敬義)는 병부참정으로 보국삼중대광문 하시중에 증직되고 시호는 충민(忠民)이다. 충민공 경의의 아 들 득중은 공민왕조에 삼중대광문하시중이고 그의 차자 갱 은 정조의 부마이고 지돈영부사, 부마공의 아들 서창(徐昌)은 문 과에 올라 함길도 관찰사로 세조조 정란공신으로 아들 여섯을 두었는데 이중 셋째 휘 위(緯)는 재용감 봉사로 봉사공파 파조 가되는데곧중추공의10대조가된다. 봉사공의 손자 충(忠, 司猛)의 차자 명윤(命胤)은 어모장군 이고 그의 아들 휘 한(漢)의 자는 응운(應雲)으로 임진왜란에 가평 이곡리에 처음 이거해와 정착하였다. 아들 정실(廷實)은 유규(有圭)를 낳았는데 무과로 충무위 속했는데 이후 수직(80 歲)으로 통정에 올랐고, 아들 계의(戒義)는 절충장군으로 동 만(東萬)·동찬(東贊)·동춘(東春) 두었는데 이중 셋째 동춘은 한성부좌윤에 증직되었다. 그의 아들 성채(盛采)는 무과로 훈 련원 주부와 부호군으로 슬하에 경환·준환·정환을 두었는데 셋째정환은중추부사로이곡문중의비조(鼻祖)가된다. 가평군은 경기도 동북 산간지역에 놓여 있으며,홍천강이 북 한강과 합류하여 서남방향으로 흐르는 고장으로 북쪽으로는 백두대간의 최고봉인 화악산이 진산(鎭山)이 되어 촛대봉, 매 봉, 국망봉, 강씨봉, 명지산, 수덕산, 계관산을 거느리며, 해발 700∼800m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을 끼고 웅장한 맥을 이루고 있어 천혜의 관광지로 유명하다. 그리고 북면 이곡리(梨谷里) 는 가평읍 마장리에 소재한 속칭 노루목고개 넘어에 있는 마을 로서 북면의 관문마을이다. 북면의 모든 하천이 모여 이곳을 지나 흐르므로 전경이 매우 아름다우며,광활한 넓은 평지에서 는 해마다 풍년을 기약하는 풍요로움의 전형적인 농촌마을이 다. 50여 가구로 번성한 중추공 이곡문중의 후예들은 종중의 뿌리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 그리고 선조의 묘원을 정비하고 관리하는데소홀함이없다. 이곡문중의 묘원은 가평군 북면 이곡리 산7번지 소재 1천여 평에 조성되어 임진왜란에 입향하여 뿌리를 내린 휘 한(漢)의 제단과 비조 중추공 휘정환,아들 시현,손자성구의묘소 실전 으로 추모제단, 통정대부 휘 유규의 묘 이곡문중 세장천비와 합동제단과 휘 원호(시조왕 64세) 이하 후손들이 묘역으로 조 성되었다. 59세 휘 동춘(東春)공의 묘소는 군부대 내(탄약고) 에있다. 종중의 대소사를 맡고 있는 기천 현종과 집안의 동생 기명, 기천 현종의 아들 필호 군은 종중을 지켜나가는 든든한 대들보 이다.기천·기명현종은상급종친회참석은물론이곡문중의종 원들이 하나가 되어 가는데 든든한 역학을 해냄으로서 지금의 이곡문중을 만들어 냈다.그리고 필호 군은 아버지 기천 현종의 뒤를 이어 가평 명지산 잣 영농조합법인을 운영하면서 충헌공 파 청년회 등 각급 종친회 등에 열성적으로 참여 헌신하는 등 이곡 문중의 대를 잇고 있다. 특히 명환 청년회장을 비롯한 지 희 본보 명예기자 등과 교류하며 보학상식을 증진시키는 등 미 래종중을이끌어갈준비를착실히해나가는것이다. 한편 가평 명지산 잣 영농조합법인에서 생산되는 잣은 깨끗 한 공기와 맑은 물 의 대명사인 청정 가평 잣 나무에서 직접생산된 것으로 △잣알이 굵고 알 맹이가 건실 △ 잣 의 고유의 향이 살 아있으며 맛 또한 담백하다. △ 보습 성이 좋으며 저장 성이 뛰어나고 △ 직접 생산, 가공, 판 매하고 있어 특산 품으로 가치가 있 다. 특히 잣 생산은 문중 운영의 기반 이 되 고 있 어 오 늘 도 열심히 뛰고 있 는 필 호 대 표 의 땀 방울이 그 무엇보 다더빛이난다. 뱚종중탐방 충헌공파중추공이곡문중 중추공종중묘원,경기도가평군북면이곡리산7번지 이곡문중연원 본보지희명예기자와기명(中)기천(右)현종이뿌 리를찾는과정을설명하며당시를회고하고있다. 1902년임인보에가평입향사실이전해진다. 선원세계(璿源世系) 이곡문중후예 온라인으로 판매되는 잣 제품, 주문전화 031-58 1-6066 가평명지산잣영농조합법인의잣포장현장, 깨 끗한 공기와 맑은 물의 대명사인 청정 가평 잣 나 무에서직접생산된것으로인기가좋다. 밀성박씨전국청년회(이하 밀청)는 2001년 4월 창립하여 20 03년부터 매년 빠짐없이 선조 유적탐방을 통해 자기계발을 가 져왔다.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정부의 방역지침을 따르다 보 니 2020년 1월 제주지역을 끝으로 지난해에는 행사를 갖지 못 했다.이에지난9일회장단회의에서는‘코로나19’를풍토병으 로 지정하면서 방역이 완화되어 일상으로 돌아와 행사를 추진 키로 한 가운데 병룡 회장은 철저한 계획으로 회원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는데주력할것이라고말했다. 이번 순례를 기획하고 있는 상섭 조직담당부회장(본보 편집 국장)은 호남지방의 토호 명문으로 성장한 음성박씨 벽진서원 과 충주박씨 봉산재, 밀성박씨 서석단, 담양 죽녹원으로 코스 를 정했다며 순례지를 소개하고 호남지방의 풍부한 먹 거리와 담양의 죽녹원은 초암 박인수 현종이 훈장으로 있어 또 하나의 추억으로 남으로 것이라고 말했으며, 밀양 밀성재에서 오전 8 시출발하여오후8시도착예정이다. 이번 순례단의 규모는 약 100여명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경 북 포항에서 출발하는 1호차는 밀양 창녕을 경유하고, 경북 청 도에서 출발하는 2호차는 창녕에서 1호차와 조우하여 간단한 간식을먹고함께출발한다. 벽진서원은 1면과 5면 기사를 참조하고, 충주박씨 봉산재는 강직한 성품과 청백리로 유명한 눌재 박상(訥齋朴祥,1474~15 30) 선생의 재사(齋舍·丙舍)로 1919년 창건되었는데 창건 당 시 다른 곳의 집을 옮겨 세웠다고 전해진다.그러나 100년의 세 월은이를지켜내지못해2019년 중건되었다. 재호(齋號)를 봉산재라 함은 뒷산이름이 봉황산으로 눌재 선생을 봉산거사라 하여 봉산재이고, 퇴계선생은 눌재선생을 원우의 완인 이라 했으며 절의를 완성했다는 뜻으로 대문을 완 절문(完節門)이라 하였으며, 중건기는 고당 김충호, 상량문은 노 강 박 래 호 , 주 련 글 은 원 파 박 수 섭 선 생 이 각 각 짓 고 취 석 박 원해선생이뙣다. 눌재 박상 선생은 광주광역시 서구 방하동에서 부친 지흥 (智興)과 어머니 계성서씨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눌재의 형은 하촌공 휘 정(禎)이고 동생은 육봉공 휘 우(祐)이다. 삼 형제 모두 문장이 뛰어나 중국의 삼소[三蘇,송나라때 소순(蘇 洵)과그의 아들소식(蘇軾)·소철(蘇轍)]에 비견하여 ‘동국삼 박(東國三朴)이라 칭한다. 28세에 대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 아가 56세까지 공직자로서 책무를 다했다.전라 도사를 역임하 던 중에 그 딸이 연산군의 궁인이 되자 온작 횡포를 자행하던 우부리(牛夫里)를 처단한 일, 사간원 헌납 직에서 외척 중용을 반대한 일,담양부사 시절 춘창군수 김정과 함께 신비복위상소 를 올린 일 등으로 옥고를 치르거나 유배당했으며,담양부사와 충주목사로재임시청백리로두번이나뽑혔다. 1200여 수의 시(詩)와 부(賦)가 담긴 문집 ‘눌재집’과 역사 서 ‘동국사략(東國史略)’등을 남겼으며, 1795년(정조19) 부조 (不튐)의 명이 내려졌다. 1843년에 송호영당에 제사지냈고,18 59년에신도비를세웠다. 밀성박씨 서석단은 고려벽상공신 박춘 선생을 비롯한 아드 님과 손자 등 3대 4位의 제단으로 1976년 설치 후 세월을 이기 지 못해 퇴락하였음에도 상수원보호구역 등 각종 규제에 묶여 정비하지 못하다 지난 2019년 대대적인 모금운동을 통해 중수 하였다. ▶다음호상세설명 담양의 죽녹원은 2003년 5월에 조성하여 약 31만㎡의 공간 에 울창한 대나무숲과 가사문학의 산실인 담양의 정자문화 등 을 볼 수 있는 시가문화촌으로 구성되어 있다.전망대,쉼터,정 자, 다양한 조형물을 비롯 영화·CF촬영지와 다양한 생태문화 관광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가족,연인,친구,수학여행등 연간 관광객 100만 명이 찾는 대한민국 최고의 관광명소로 자리 잡 고있다. 밀성박씨전국청년회회장단회의 선조유적지순례등현안사업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