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page


8page

간도국민회가 조직되었으며 공은 회장으로 피선되고 지회는 80여개소이고 회원은 3000명이였다. 그러나 조직은 강회되었으나 독립전쟁을 위한 전투군단을 편성함에 있어서는 명망이 있는 지휘관이 없어서 고민하던중 홍범도장군을 맞이하게 되어 노령으로부터 무기를 구입하고 1개던투부대를 조직하시었다(1919년 8월 14일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부는 혼춘지방 한교민회 31멸이라고 회장 이명순으로 부터 보고를 받았다). 공은 국민회사령관으로 피선되어 간도지구에 서는 제일 많은 병력으로 군인 700여명 통 100정 기관포 4문을 작고 있었으며 일군과 봉오동 청산리전투에서 역사상 최대승리를 하시고 각지를 전전하며 무수히 교전하여 많은 희생자를 내었으며 군부대를 편성 재정비키위하여 노령으로 피주케하고 잔무처리를 위하여 낙후하였다가 홍하산계곡에서 일분군 1개소대를 만나 30명을 사살하였으나 적 일부대가 재출현하여 격전중 공은 간부 양동한 서윤훈 이명권 윤동호 및 병사 전원과 함께 전사하였다. 공의 구국일념과 조국광복을 위한 숭고한 업적을 후세에 유구히 보존코저 여기 추모비를 세우다. 서기 1968년 12월 16일 대한민국건국훈장국민장을 받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