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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1월경 유족들은 시신발굴 작업에 착수했다. “이미 부패한 시신들은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토하고 역겨운 냄새에 코피를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족들은 쑥으로 코를 막고 시신발굴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어린아이들의 여린 시신은 벌써 녹아 분별이 되지 않았고, 식별이 안되는 시신은 가마니 들것에 담아 이동이 용이한 바로 옆 야산 평지에 새끼줄로 줄을 맞춰 봉분을 쌓아 나갔습니다. 그 중에서도 치아나 의복에 특색이 있어 분별이 가능한 시신은 유족들이 선산으로 데려 가기도 했습니다” 현재 백동부락 위령제 묘역에는 74기의 묘역이 있다. 남자, 여자, 어린이로 구분해 매장은 했지만 어느 유족의 묘인지는 확인이 어렵다. 때문에 유족들은 모두를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기고 한꺼번에 제를 올리고 있다. 특히 어린아이들만 묶여 있는 묘역은 여러 구의 시신이 매장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