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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운이 쇠퇴하여 가고 급기야는 로일전쟁 발발 을사보호조약 강제체결을 하는 등 일본의 잔악상이 극에 달하는 격동의 세월을 지냈으며 큰형의 귀국과 국제정세를 구전심수한 공은 격분하여 형들을 따라 항일투쟁에 동참 임정의 활동 자금조달을 위해 경성 영동의 김홍제 공과 경기 진위군 오인영 공과 활동 중 1920년 3월 2일 일경에게 피포되어 3년간 옥고를 치르시고 출감 재차 상해로 망명 형제분들과 합류 영국 버스회사에 위장 취직하고 일제의 정보를 수집 임정에 제보하는 등 활동을 하다가 1933년 6월 일시 귀국을 목적으로 상해 일본 영사관에 가셨다가 영영 실종되어 오늘에 이르럿는바 참으로 이역만리 타국땅에서 조국의 광복과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며 영민하셨으리라. 1990년 광복절 정부는 공의 조국 광복에 이바지한 공로를 높이 찬양하여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배 오재순은 1900년 11월 29일 참봉 오기선 공의 장녀로 경기 시흥군 동면에서 출생하시고 1917년 1월 용한공과 결혼 슬하에 2남 1녀를 두시였다. 부군 생존시에는 이국 망명지에서 젊으실 때 부군의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으셨고 홀로 되신 후 3남매를 기르시고 가르쳐 성가시키는데 평생 갖은 고초를 겪으시고 1983년 9월 2일 차남 덕제 집에서 한 많은 일생을 마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