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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가슴아렸던많은기억들을시간의갈피갈피에서꺼내다시읽는다. 아, 빌어먹을청춘. 아마도 함덕해수욕장인가? 1985년 여름날의 밤, 우리는 제주의 바다에서 모닥불을 피웠다. 무지막지한 크기의 대야에 막걸리잔을 배처럼 띄우고 우리는 도열했다. 수습 딱지를 떼고 정식 국원으로서의 배지를 달았다.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거는 기분이었 다. 금빛으로빛나는VOU 석자가선명했다. 이후에 시작한 방송 생활은 즐거웠고 활력이 넘쳤다. 얻어터지고 혼나며 궁시렁궁 시렁시간을보냈지만그때는그때대로나름멋있었다. 언중지서에 글을 휘갈겨댔고 제작실 테크닉스 턴테이블이 돌아버릴 정도로 LP를 올려댔다. 한학기가지났다. 기억도안나는이유로동기들이나가고특히PD는일찌감치나 혼자남았다. 아마도선배들은‘승준이, 저놈까지나가면대가끊어질텐데’하고걱정 을했는지, 난개인적으로선배들의사랑을참많이받았다. 내 방송 생활의 꽃은 아마도 2학년 1학기 때가 아닌가 싶다. 맨날 울고 살았다. PD 가달랑넷이었다. 부장32기진기종이하, 32기손현석, 이현지그리고33기하나. 기종 형이 부장임을 이유로 학기 초에 방송을 어영부영하시더니 얼마 안가서 스크 립을 접었고 방송은 사실상 3명이 끌어갔다. 짬밥에서 밀리는 내가 아무래도 당직이 많았다. 내 기억에 1주일에 11개 이상의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인간적으로 이건 너무 한다 싶을 정도로 버거웠다. 수업 시간에 스크립을 쓰는 일이 많았다. 이상한 건 그 과정을 내가 즐기고 있다는 거였다. 묘한 감정이 들던 시기였다. 내가 아니면 경희대 방송국 이 문을 닫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만이라는 건 그때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상황 에 묘한 쾌감이 있었다. 희한했다. 그 빡세던 시기, 난 단 한 번의 방송 펑크도 없었다. 내 유일한 방송 펑크는 오히려 3학년 1학기 실무를 하던 때였다. 후배들이 방송에 투 입되어오히려좀널널하던시기였다. 076 | 대학의 소리 방송국 - VOU 60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