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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이 말하는 한국사 • ③ 청산리대첩의 주요 무기 77 의 자동기관총인 맥심기관총, 특히 러시아제 맥심기 관총( PM1910)을 운용하였다. ‘PM1910’이란 러시 아어 пулемёт Максима, Pulimyot Maksim의 약 자로 1910년 개발형이란 뜻이다. 기관총(Machine Gun)은 “지속적인 탄띠 급탄의 자동사격으로 부대 를 위한 화력지원 무기”라는 점에서 “개인이 쓰는 근 접 자동화기”인 기관단총(Submachine Gun)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우수한 무기다. 맥심기관총은 1884년 미국 출신으로 영국으 로 이주한 하이럼 맥심(Hiram Stevens Maxim, 1840~1916)이 개발하였다. 이 세계 최초의 실용적 자동기관총은 식민지 전쟁(수단, 남아프리카 등)에 서 위력을 입증하였다. 기존 기관총(개틀링 등)은 수 동 회전이나 외부 동력이 필요했으나, 맥심기관총은 발사 시 발생하는 반동을 이용해 자동으로 탄피 배 출·장전·격발을 반복하였다. 이로써 분당 500~600 발의 안정적인 연속 사격이 가능해졌고, 단 몇 명의 운용병으로도 수십~수백 명에 해당하는 화력을 발 휘할 수 있었다. 또한 수랭식 냉각통을 채택해 장시 간 사격 시 과열을 방지하였고, 삼각대 고정 운 용을 통해 방어·저지 화력에서 절대적 우위를 확보하였 다. 이 무기는 곧 전쟁의 성격을 개인전 중심에서 화 력전 중심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제1차 세 계대전에서 맥심기관총은 참호와 고정 진지를 중심 으로 한 ‘화력전’의 시대를 열었고, 화력의 집중이 전 투의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되었다. ‘러시아제 맥심 M1910’으로 개조와 도입 러시아 제국은 맥심기관총의 전술적 가치를 인식 하고 적극 도입에 나섰다. 넓은 영토와 혹한(酷寒) 의 기후에 적합한 기관총이 필요했던 러시아제국 은 1895년 초 맥심기관총을 자국 제식탄인 7.62× 54mmR에 맞게 개조하였다. 여기에 1910년 러시아 군수 기술자 소콜로프(Ivan Semyonovich Sokolov, 1866~1936)가 개발한 바퀴 달린 방패형 거치대를 채택하였다. 이 개조된 기관총은 혹한 대응을 위한 워터 재킷 보온장치도 적용하였다. 기존 삼각대보다 이동성과 방어력을 강화하여 동부전선의 참호전·혹 「한국광복군, 그리고 국군」 특별전에 전시된 러시아맥심기관총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제공) 러시아맥심기관총(전쟁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