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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스크랩 • 구국 의병항쟁 열전 - 거룩한 구국항쟁의 현장을 가다 ⑮ 77 태원 · 김율 등과 연합 의진을 구성하기도 하면서 적 과 교전하였다. 1908년 1월 19일 탑정리에서, 2월 19일 고창 읍 내, 이튿날 장성 토정리, 2월 24일 장성 송치(松峙), 3 월 2일 영광 오동리, 3월 12일 구수산, 3월 23일 영 광 홍농면 대덕리, 4월 11일 무장 선운사, 17일 무장 와공면 유동 등지에서 적과 싸워 많은 전과를 올렸 지만, 마침내 적에게 패하였고 김용구는 부상을 당 해 정신까지 혼미해졌다. 김용구는 군권을 박도경에 게 맡기고 장성 백암산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3, 4년을 숨어서 치병하는 가운데 병은 좀 나았으나, 1910년 8월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 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 다시 후사를 도모할 목적으 로 더 깊은 산중인 금산 산중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울분과 노환이 겹친 데다가 고종이 승하했다는 변고 를 듣고 음독, 1918년 12월 21일(음력) 절사(節死)하 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8년에 건 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김기봉 의병 행장] 김용구(金容球)의 아들이다. 1907년 정미7조약 체 결 후 군대해산이 단행되자 김기봉은 아버지와 함께 기삼연의 호남창의회맹소 회합에 참여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일찍이 1895년 을미의병 때에 기 우만(奇宇萬)의 광산회맹소(光山會盟所) 의병운동에 기삼연과 함께 장성 의진을 거느리고 참여한 바 있 었다. 이 때에 아버지 김용구는 기삼연 의진의 통령 (統領)이 되어 무장 · 법성포 · 고창 · 장성 등지에서 위세 를 떨쳤다. 김기봉은 아버지를 따라 작전을 수행해 오다가 1907년 12월 10일 전북의 흥덕 안치 전투에서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45년 경북 구미 출생으로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30여 년 교사생활과 함께 작가, 시민기자로 지냈다. 지금은 강원도 원주 치악산 밑에서 창작일에 전념하 고 있으며 광복회 고문을 맡고 있다. 작품으로 장편소설 『전쟁과 사랑』 · 『허형식 장군』, 산문집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 · 『항일유적답사기』 · 『누가 이 나라를 지켰 을 까』 · 『영웅 안중근』 · 『대한민국 대통령』 등이 있다. 이밖에도 사진집 『나를 울린 한국 전쟁 100장면』 · 『개화기와 대한 제국』 · 『일제강점기』 · 『미군정 3년사』 · 『지울 수 없는 이미지』 등과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 『평화와 인권의 대통령, 김대중』 등이 있다. 필자 박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