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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스크랩 • 재일한인 독립운동사의 신조명 ⑥ 77 할 것이며, 경제적 독립만이 여성해방의 목적을 이 룰 수 있음을 주장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❶ 서두에 ‘최형’이라는 호칭 이후 ‘형님’이라는 호칭을 반복하며 누군가에게 보내는 서간문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❷ 사회 저변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던 조선의 양 모현처주의(良母賢妻主義)를 배격하고, 여성을 물건으로 취급하며 가축으로 여기는 남성들의 우월함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❸ 조선 여성들만은 한밤중으로, 여성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현실을 빗대 조선의 여인들만은 “세상의 움직임을 외면한 채 숙면을 취하고 있으며, 옥중생활을 하고 있다.” 고 했다. ❹ 조선의 여성 문제는 조선 사회 근저에 깊이 박혀있는 여성의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며, 여성을 남성의 전유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강평국의 글 「 여성해방의 잡감 」 은 여성을 업신여 기는 사회적 풍토에 대항한다. 언제든 여성을 노예 로 취급하고자 하는 다수의 남성들과 그들을 대표하 는 지식인 남성들을 향한 글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 이다. 덧붙여 여성만을 대상으로 글을 썼다고 보기 보다는 해방의 주체가 되어야 할 지식인들에게 동의 를 요청하는 기고문으로 볼 수 있다. 조선 땅에서 여 성의 자유로움에 대해 감히 이야기하기 어렵던 시 절, 세상의 흐름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여성들이 지 향해야 할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 가 크다. 강평국의 재일조선인 민족운동 ①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도쿄 동부 조선노동조합 재일조선인 노동운동 단체는 초기의 상호부조와 친목을 목적으로 하는 경향에서 노동자계급의 성장 과 함께 계급해방을 내건 조직으로 성장해 갔는데, 가시적 산물이 1925년 조직된 재일본조선노동총동 맹이다.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은 조직된 이후 전협(정식 명칭은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으로 해소될 때까 지 조직적 발전을 거듭했는데, 1927년 제3회 대회 때는 3만 3백여명의 조합원을 갖는 조합으로 성장했 다. 1927년은 재일조선인 운동사에 있어 투쟁이 활 발했던 시기로,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산하의 도쿄 조선노동조합도 활발하게 움직였다. 강평국이 가담한 것으로 보이는 도쿄조선노동조 합은 1927년 조합원이 약 3천90명이었다. 집행위 원장은 양재도로 5개의 지부가 있었는데, 동부 · 서 부 · 남부 · 북부 · 다마가와(玉川)지부가 조직되어 있었 다. 강평국은 동부지부의 구성원으로 활동했던 것 같다. 그는 동부지부의 구성원으로 일상적인 교육과 동 시에 조직사업을 전개했다. 조직의 발전을 거듭하던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은 1929년 6월 시기에 41개 지부가 결성 되었고, 6개 지역에 조직이 준비 중이었 다. 이러한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의 조직은 주로 도 시 중심의 조선인 노동자, 특히 자유노동자들의 조 직율이 높았다. 1929년 시기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