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page
75page
헤이그 특사, 그후
이상설과 이위종은 이준의 사망 후 특사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그들은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나 일제가 고종과 내각의 동의 없이 을사늑약을 강압하였으나, 한국은 결코 보호국화에 동의하지 않았다며 지지를 요청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는 성사되지 못했다. 이에 미국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 및 기고를 통해 일제의 불법적인 국권 침탈의 실상과 대한제국의 독립 의지를 알리는 데 힘썼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대체로 동정은 하지만 희망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사들이 미국에서 활동하는 동안 평리원(平理院)에서는 재판이 열려 '사명을 띤 관인 사칭죄'로 이상설에게 사형을, 이준과 이위종에게 종신형을 선고하였다. 졸지에 망명객이 된 두 특사는 헤이그로 돌아가 이준의 장례식을 치른 뒤, 이상설은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위종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떠나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 이상설, 1917년 3월 2일 니콜리스크에서 순국, 향년 48세
* 이위종, 러시아 적군에 가담, 생사 미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