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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스크랩 • 구국 의병항쟁 열전 - 거룩한 구국항쟁의 현장을 가다 ㉒ 75 로 · 홍명희 · 이인 등이었다고 『한용운 평전』에 전하고 있다. 제1차 답사 귀국 후 김중생 선생은 그 엄혹한 시 절에 당신 할아버지 시신을 수습하여 장사를 치러준 만해 한용운 선생의 공덕을 무척이나 감사히 여기기 에 필자가 작고하신 만해 한용운 선생 대신 『한룡운 평전』을 쓴 고은 시인과 만남을 주선했다. 그리하여 2002년 9월 10일, 오후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백발 성성한 두 어른이 서로 얼싸안았다. 고 : 늘 흠모해 왔던 일송 선생의 혈육을 이렇게 만 나게 되다니 정말 감격스럽습니다. 김 : 그 무서웠던 시절, 제 할아버지 유해를 수습해  주신 만해 선생의 은혜를 백골난망으로 여기고 있었 는데, 만해 선생 대신 고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되니 지 하에 계신 조부님께서도 오늘 만남을 대단히 기뻐하 실 겁니다. 마침내 ‘백서농장’을 찾아가다 필자는 2004년 5월에 안동 문화방송의 ‘혁신 유 림’이라는 프로에 코디 역을 맡아 다시 중국의 동북3 성 일대를 답사했다. 그때 중국 신빈현(新賓縣) 거주 조선민족사학회 부이사장인 조문기(曹文奇) 교수의 안내로 본격 백서농장 답사에 나섰다. 그해 5월 31 일 일찍 신빈을 출발, 유하현(柳河縣)에 도착한 뒤 늦 은 점심을 먹은 다음, 곧장 백서농장으로 달려갔다. 유하에서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통화로 가다가 안 인(安仁)이라는 표지판을 3km 지난 곳에서 오른쪽 으로 방향을 틀었다. 거기서부터는 길이 몹시 험하 고 차량 통행도 뜸했다. 백서농장이 있는 쏘베차(小 北 岔 )는 농장 건설 당시인 1914년 무렵에도 ‘백두산 서쪽’의 산속으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깊은 삼 림지대라고 했던 바, 한 세기가 지난 그때도 첩첩산 중의 오지였다. 그 들머리에서 40여 분을 더 달리자 따베차(大北岔 ) 마을 임장(林場) 초소가 나왔다. 그 따베차 마을에 차를 세우고 주민들에게 쏘베차를 묻 자, 그곳은 그 마을 어귀에서 다시 왼쪽 좁은 산길로 한참 들어가야 하는데 그곳에는 현재 중국군 특수부 대가 주둔하기에 민간인 출입금지 지역이라고 했다. 수륙만리 먼 길을 찾아온 우리로서는 만난을 무릅 쓰고라도 백서농장 현장을 가고자 했지만, 길 안내 자 조문기 교수는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발걸음을 떼 지 않았다. 조 교수는 “중국군은 무지막지하여 이국 인이 군부대를 얼씬거리면 간첩죄로 잡아서 처형도 불사한다”는 얘기를 늘어놓았다. 그리하여 고국에서 간 우리 일행은 끝내 아쉬운 탄식을 연발하며 발길 을 되돌렸다. 1945년 경북 구미 출생으로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30여 년 교사생활과 함께 작가, 시민기자로 지냈다. 지금은 강원도 원주 치악산 밑에서 창작일에 전념하 고 있으며 광복회 고문을 맡고 있다. 작품으로 장편소설 『전쟁과 사랑』 · 『허형식 장군』, 산문집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 · 『항일유적답사기』 · 『누가 이 나라를 지켰 을 까』 · 『영웅 안중근』 · 『대한민국 대통령』 등이 있다. 이밖에도 사진집 『나를 울린 한국 전쟁 100장면』 · 『개화기와 대한 제국』 · 『일제강점기』 · 『미군정 3년사』 · 『지울 수 없는 이미지』 등과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 『평화와 인권의 대통령, 김대중』 등이 있다. 필자 박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