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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전 목사 기념비
김인전목사는 1876년 충남 서천군 한산에서 휘 규배의 장남으로 태어나다. 관향은 김해요 당호는 경재라 하다. 조부 휘 태현은 현감 부친은 군수를 역임하였으니 고연의 가문에서 자라나다. 일찌기 구학문을 익히고 부친의 신앙을 좇아 기독교에 입교하다. 일제에 국권을 빼았기게 되자 민족계몽에 뜻을 품고 1911년에는 사재를 털어 한영학교를 설립하여 인재를 길러내다. 오직 구국의 길은 신앙이라는 일념으로 1914년 39세의 만학으로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전주 서문교회 제2대 목사로 부임하여 교세를 펼치다. 덕성과 해박한 지식으로 교화에 힘쓰니 교인들은 물론 신흥 기전학교 교사들을 위시하여 기인 김보한 선생 등 만은 전주 인사들이 경모하고 그의 뜻을 따르다. 3.1운동이 일어나니 목사는 전주교계의 지도자로서 활약하시다가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이승만 김구 등 임정요인들과 조국광복에 앞장서다. 1920년에는 상해 대한인 거류민단 의원으로 피선되어 전북을 대표하고 임시정부의 재무부 비서국장 공채관리국장 학무총장 등을 역임하는 한편 태평양회의 외무후원회와 노병회를 조직하는데 주역을 맡았고 의정원 제4대 의장으로 선임되어 임정에 크게 이바지 하다. 1923년 우연히 병을 얻어 상해 일우에서 조국광복을 보지 못한 채 서거하니 향년 47세라. 유해는 상해 송경령 능원에 묻혀 계시다. 독립기념관에는 목사의 입상이 세워질 계획이 있고 이에 동지들이 뜻을 받들어 기념하고자 한다. - 1986년 4월 29일 서은선 짓고 권갑석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