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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2026년 3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스크랩 늘어났다. 태극기를 흔들지는 않았다. 이날 서울 말 고도 평양, 진남포, 안주, 의주, 선천, 원산에서 거의 같은 시간에 만세시위를 벌였다. 서울과 도시 지역 에서 시위를 이끌거나 경험한 학생들이 고향으로 내 려가 시위를 조직하고 선동하여 운동을 전국으로 확 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3·1운동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초기 단계부터 노동자들끼리 또는 시민 학생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나섰으며, 파업 투쟁으로 3·1운동의 분위기를 이어나갔다. 3·1운동은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 1919년 3~4 월을 어떻게 경험했고, 경험한 사건을 어떻게 인식 하고 평가하느냐에 따라 운동의 방향과 주체가 바 뀌고 나뉘어지는 분수령이 되었다. 1920년대 일제 의 소위 ‘문화정치’라는 개량의 공간 한편에서는 “무 식한 대중이 2백만 3백만이 들고일어났는데도 결국 실패하고 말지 않았나? 얻은 것이 뭐냐, 주어진 조건 을 활용하면서 힘을 기르고 필요하면 일제의 지배기 구에 들어가서 입지를 넓히는 것도 운동의 방법아니 냐”하면서, 자신들의 좌절과 변절을 정당화하는 타 협적 개량적 민족주의가 고개를 내밀며 목소리를 높 여갔다. 다른 한편에서는 3·1운동 과정에서 억눌리고 빼앗 기고 무시당하던 ‘무지렁이 백성’들이 뿜어내는 힘 을 보면서 노동자 농민대중을 민족해방운동의 주체 로 인식한 활동가들이 대거 형성되었다. 그들은 3·1 운동 이전부터 1917년 러시아 혁명을 놀라운 눈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