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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2024년 6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6월의 독립운동가 시아의 경쟁자인 일본에 대해 큰 비판의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1906년 두 번째로 한국에 도착한 맥켄지가 목격 한 일본은 제국주의 팽창에 혈안이 된 나라였다. 한 국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한국인을 탄압하는 일 본에 크게 실망한 그는 이를 비판하는 글들을 쓰 기 시작했다. 나아가 일본에 맞서 싸우는 의병의 활약상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취재하여 이를 세계 에 알렸다. 그리고 1907년 말까지 약 1년 6개월 동 안 한국에 머물며 목도한 현실을 『대한제국의 비극 (Tragedy of Korea)』이라는 책을 통해 세상에 밝혔 으며, 그에 앞서 『베일 벗은 아시아(The Unveiled East)』(1907)를 통해 동아시아에 등장한 ‘새로운 일 본’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한때 일본인의 친구로 여겨지기도 했던 맥켄지는 영국에서조차 ‘반일’ 인 사라고 비판받기도 했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 과 이를 위해 사용된 폭력 적 수단은 결국 일본 자신 의 안녕과 세계 평화에 심 각한 위협이 될 것”(『자유를 위한 한국인의 투쟁(Korea’ s Fight for Freedom)』 서 문)이라고 확신한 맥켄지는 1919년 3ㆍ1운동이 일어나 자,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 을 비판하고, 한국의 정의 로운 저항을 높이 평가하며 이를 역사적 기록으로 남겼 다. 1920년 ‘자유와 정의’를 지지하며 『자유를 위한 한국인의 투쟁』을 발간한 것 이다. 한국독립을 지지하는 맥켄지의 신념은 언론, 저술 활동에만 그치지 않았다. 1919년 11월 김규식을 통 해 한국 독립의 선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 한 그는 영국에서 지원 활동을 시작했다. 마침 미국 에서 구미위원부가 설치되고 한국친우회 활동이 활 발해지는 상황에서 김규식 등은 런던에 새로운 거점 을 마련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일본에 대한 비 판적 자세를 견지하던 맥켄지의 신간이 1920년 4월 발간되자 일본의 아시아-시베리아 지배 문제, 한국 에 대한 학살과 탄압, 이에 저항하는 한국인들의 투 쟁이 영국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상황에서 1920년 10월 3일 파리위원부의 황 기환이 런던에 도착했다. 영국 언론은 ‘한국사절단 [Korean Mission]의 E. K. Whang(황기환)’이 일본 1907년 『데일리 메일』 종군기자였던 프레드릭 맥켄지가 경기도 양평에서 의병들을 직접 만 나보고 찍은 의병부대의 모습. 맥켄지의 저서인 『The Tragedy of Korea(대한제국의 비극)』 (1908)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