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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토는 유린되고 민생은 질곡에 신음하던 오욕의 일제치하에서 국권을 회복하여 동포를 구출하려고 분연히 일어나 회천의 비수를 품고 만주 광야를 누비던 애국지사 박봉필 선생의 행적은 백절불굴한 민족혼의 발로이며 찬연한 민족정기의 정화라 하겠다. 선생이 가신지 반세기 그렇게도 숙원하신던 광복은 이룩되어 번영을 구가 하건만 만리이역에서 천추의 한을 품은 채 순국하신 선생의 고혼을 달랠 길이 막막하여 여기 작은 비를 세워 선생의 의연하고 혁혁한 공적을 후인들의 가슴에 면면히 새기로자 한다. 선생은 반남인으로 시조 박응주의 25세 손이며 려말의 절의지사인 문정공 박상충과 태종조 좌명공신으로 좌상을 역임한 평도공 박은의 후손이며 상신과 문형등 수많은 명신 거유를 배출한 명문의 후예이시다. 선생은 1908년 3월 29일 향리인 경북 예천군 용문면 덕신리에서 선대인 승경공의 2남으로 출생하였다. 완장 승원공에게 출계하여 성장함에 선비정신이 투철한 생,양부 두 분의 근엄정중하신 훈도로 선생의 애국정신은 함양되었다. 1915년 5월 실국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