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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김영익선생은 안동후인으로 단기 4231년(1898) 무술 9월 16일 음성군 음성면 초천리에서 부 김수홍공과 모 광주반씨의 3남으로 출생하시다. 조부 정훈공은 구 한말 통정대부를 역임하시고 효행이 지극하여 효자로 표창되어 삼강록과 상흥승람에 명기되시다. 부 수홍공은 중학교관을 역임하시고 문장이 탁월하시다. 결술년 일제침략 국치에 항거하는 만인 ?를 울려 애국지성을 발양하시고 유고 4권이 전하시다. 선생은 유시부터 한학에 전심하여 학덕을 겸비하고 서예에 능하며 타의 존경을 받으시다. 기미년 선생의 21세시 서울 탑골공원에서 3월 1일 독립선언문 낭독과 더불어 만세시위운동이 궐기되자 전국 방방곡곡으로 전파되어 음성에서는 3월 18일 천도교 교구를 주축으로 장터에서 만세시위가 불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