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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일제의 조선강점 시기에 민족적 항거가 있었던 ’19년 원산 부두에서 가 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보통학교를 마쳤다. ’30년대 10대 노동자로 원산부 두노동자 파업에 참가하였고, ’44년엔 항일운동체인‘건국동맹’원산지부에 참여 하는 열성을 보였다. 일제패망 뒤 서울에서 여운형, 안재홍 중심의‘건국준비위원 회’에 참여하였고, 이승만의 독재가 노골화되던 때 조윤제, 김시현, 이종률, 유시 태, 박영식씨 등과 함께‘민족건양회’에 참여하며 책임간사로 활동하였다. ’60년 4월 혁명 뒤에는 진보세력의 통일운동전선체인‘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 협의회’에서 조직위원장으로 피선되어 활약을 하였으나 5.16군사쿠데타로 투옥 되어 혁명재판에서 1심 사형, 2심 무기, 3심 15년이 확정되었으나 ’67년 12.25 특 사로 나올 때까지 7년 옥고를 치루기도 하였다. 군사정권시절 온갖 박해 속에서 도 의연히 통일을 염원하며 ’89년‘민족자주평화통일협의회’재건에 함께 하였 고 공동의장을 맡기도 하였다. 동지는 바다같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안을 수 있는 여유와 옳지 않은 것을 정 화시킬 수 있는 높은 도덕성과 만인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인품을 가졌다. 배타 적 주장이나 불필요한 논쟁을 하지 않았고 조용히 듣고 말없이 실천하였으며 당 신의 행적에 조금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서슴없이 스스로를 비판하며 옳은 길을 갔다. 그래서 동지의 장례식이 있던 날은 평소에 동지와 뜻을 같이 했던 전국의 많은 동지들과 후배들, 그리고 민족민주운동단체 일꾼들과 동지를 존경하고 따랐던 소장학자들까지 모여 기둥 잃은 슬픔으로 오열하였다. 문한영(당시77세) 수유리 도봉산묘지에 안장 1919년 원산 출생 1930년 10대의 노동자로 원산부두 노동자파업에 참가 1944년 ‘건국동맹’원산지부 참여 일제패망 뒤‘건국준비위원회’참여 1960년 4월 혁명 뒤‘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협의회’조직위원장 1980년 5.16 쿠데타로 투옥 1989년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협의회’재건에 힘씀 1996년 4월 18일 운명 끝내살리라 |145| |144|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김영삼정권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