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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2024년 3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여성독립운동가 열전 촉구하기 위해 목포 시내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 했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나는 평소 동아일보를 구독해 왔는데 1921년 11 월 초 신문에 이르길, 북미합중국 워싱턴에서 각국 의 전권위원이 회동하였는데 이 회의는 주로 태평양 연안 여러 나라가 영원한 평화를 도모할 목적이라는 내용의 기사였다. 조선은 예부터 순연(純然)한 독립 국이었는데 지금은 타국(일본)에 영유(領有)되어 있 으므로 반드시 조선민족을 대표 하는 인물이 이 회의에 참여하여 독립을 위 해 진력할 것을 기대하고 성원을 보내 기 위해 11월 13일 오후 4시경 피고 김나열 등 10명이 동교 기숙사에 모여 독립운동 할 것을 의논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국기를 만들어 다음날인 14일 정오를 기해 교문을 빠져나와 조선독 립만세를 부르며 목포시가를 줄지어 행진하기로 약속했다. 14일이 되자 정 오가 되기를 기다려 교문을 빠져나와 국기를 각각 손에 들고 독립만세를 부 르며 남교동에서 죽동, 창평정, 대정정 에 이르렀다.” - 대구복심법원 김나열 판결문 일부(1922.3.11) - 따님 장경희 여사가 전하는 김나열 지사의 삶 열네 살 어린나이로 독립만세시위 에 앞장섰던 당찬 소녀 김나열(대통령 표창, 2012) 지사는 그 뒤 어떠한 삶 을 살았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백 방으로 유족을 찾다가 김나열 지사의 따님인 장경희 여사와 가까스로 연락이 닿았다. 그러나 장경희 여 사께서는 마침 미국 여행을 앞두고 있어 직접 만나 지는 못했다. 그 대신 메일로 친절히 필자의 질문에 답을 보내왔다. “다음과 같이 저희 어머님(김나열)에 대한 자료를 보내드립니다.”로 시작되는 편지를 그 대로 가감 없이 소개한다.  1903년 당시 근대식 석조건물로 지어진 정명여학교 모습 ‘100주년기념자료관’에 각종 자료들이 빼곡하다.(이윤옥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