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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백응선(白膺善) 묘비문(墓碑文)
“군의 이름은 응선(膺善)이요 본관은 수원 백씨(水原白氏)이고 찬규(粲奎)의 아들이다. 1896년 3월 27일에 낳고 1920년 3월 28일에 죽었다. 교래리경 조인납(助仁納) 선고(先考)의 무덤 우측 곤좌(坤坐)의 무덤이다. 딸 하나를 두었다. 기미년 봄 군(君)과 더불어 뜻을 같이 한 14인은 독립을 선전하다가 체포되어 복역(服役)을 마치고 출옥(出獄)하였는데 반년이 못되어 문득 불귀(不)의 객(客)이 되었도다. 오호라! 슬프도다. 마음속에 새겨 말하노라 오호라! 백군(君)이여, 천명(天命)이런가 운명(運命)이런가. 동지(同志) 14인은 바야흐로 투옥(投獄)되었지만 조국 독립을 위하여 내 몸 버리기를 홍모(鴻毛)와 같이 가볍게 여겼는데 급기야 출옥하였지만 일편단심 맹세한 것은 지난날과 같도다. 오호라! 백군이여, 천명이런가 운명이런가. 동지(同志)들이 같이 죽지 못하고 같이 따라 간장(肝臟)을 여미고 창자를 찢지 못함이여. 오호라!백군 이여, 천명이런가 운명이런가. 동지 14인은 군의 영(靈)에 통곡하며 군의 영을 다소나마 위로하고자 단갈(短碣)에 새기노라. 단군 4255년 임술 3월”
∎이 묘비(墓碑)는 조천만세운동 동지 김용찬, 김시은, 김시범, 이문천, 김경희, 김연배, 박두규, 김필원, 황진식, 김희영(김희수), 고재륜, 김형배, 김장환 등 13인이 옥살이할 때 노역으로 받은 돈을 모아서 세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