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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독립운동가 열전 • 일본·중국·미국을 종횡무진하며 광복을 향해 뛴 “차경신” 71 차경신 지사가 여러 차례에 걸쳐 중국군 지원에 앞장섰던 까닭은 중국을 돕는 것이 곧 우리의 독립 운동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송미령 여 사 역시 1932년 상하이에서 윤봉길 의거가 일어나 자 한인애국단에 10만원의 후원금을 지원하였고, 1940년에는 충칭에서 한국광복군이 조직되자 다시 10만원의 후원금을 지원하는 등 남편 장개석과 함께 한국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하였다. 부군 박재형도 미주에서 독립운동 한편 독립운동가인 남편 박재형(2017 애족장) 지 사는 평안남도가 고향으로 1905년 5월 하와이로 이 민을 떠났다가 1910년 11월 30일 시카고로 건너갔 다. 그곳에서 대한인국민회 산하 지방회가 설립되자 가입했으며, 1911년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여 광복 될 때까지 대한인국민회 로스앤젤레스지방회에서 활 동했다. 1913년 6월 로스앤젤레스지방회 부회장 겸 재무로 일했는데 1919년 지방회 회장이 되어 활동했 다. 그해 8월부터 10월까지 국민회 산하 로스앤젤레 스 파출소 위원, 1920년 12월 국내 한인들의 구제를 위한 구제금 모집 지방위원, 1921년 5월 구미위원부 로스앤젤레스 지방위원으로 북간도에 구휼금과 인구 세를 보내는 등 조국 광 복을 위해 부인 차경신 지사와 함께 뛰었다. 차경신 지사는 광복 뒤 1960년, 자유당의 부 정부패를 규탄하기 위 한 민주정권 수립 촉구 민중대회에 이화목, 임 메불, 강영복 등과 대한 여자애국단 대표로 고 국을 방문했다. 또한 1978년에는 보성여학교에 장학금 5천달러를 기 부 하는 등 일편단심 조국 광복과 발전을 위해 헌신적 인 삶을 살다 1978년 9월 28일, 향년 86세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숨을 거뒀다. 한국외대 일본어과 졸업, 문학박사. 일본 와세다대학 연구원, 한국외대 연수평가원 교수를 역임했으며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인 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 『동고동락 부부독립운동가 104쌍 이야기』, 시와 역사로 읽는 『서간도에 들꽃 피다』(전10권), 『여성독립운동가 300인 인물사전』 등 여 성독립운동 관련 저서 20권과 다수의 저서가 있다. 필자 이윤옥 박재형·차경신 부부독립운동 가의 모습 대한여자애국단 기념식에서 차경신 단장은 연설을 했다(『신한민보』 1924.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