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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성 선생의 호는 원봉이며, 1914년 3월 3일 본 군 선산읍 교리에서 인동장공 병희님의 세째 아들로 태어났다.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타고난 재주와 건강한 몸과 마음에 엄격한 가훈을 받으며 선산보통학교(현 선산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배재학당을 거쳐 청운의 뜻을 품고 일본에 가서 고수중학을 졸업 동경의 일본대학교 법과에서 공부하던 중 우리나라 임시 정부의 지령을 받아 민족 해방과 자주 독립의 대망을 구현하는 독립 운동에 헌신할 뜻을 세워 학생 항일 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그로부터 선생은 학업을 계속하며 뜻있는 동지를 규합하고 항일 사상을 고취하였으며 시집 "말하는 침묵" 애국가요 "명사십리", 잡지 "민족이여 일어나자" 등을 출간 유토하여 잠자는 민족혼을 일깨웠으며 시나리오 "홍주머니" 일명 "아리랑"을 창작하여 영화 제작을 하려고 고국의 영화 감독 및 동지에게 우편으로 보낸 것이 적발되어 귀국 길에 선생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대업달성은 중단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