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page


71page

15세미만 어린이 피학살자 명단 ...중략..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6개월 전인 1949년 12월 24일(음력 11월 5일) 정오쯤 국군복장의 중무장한 군인 80여명이 석달마을에 진입하여 마을을 포위하고 주민 모두를 마을앞 논으로 모이게 한 후 무차별 사격을 가하여 대부분 사망케하였고 여기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다시 모이게 하여 재차 확인 사살의 만행을 자행하였다.또 학교에서 하교 후 돌아오는 학생들에도 총격을 가하여 참혹한 죽임을 당하게 하였다. 이러한 만행으로 24세대 가옥 전부가 불타고 86명이 사망하였으며 사망자중에는 여자 41명 65세 이상 노인 13명 15세 미만 어리이도 25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만행을 자행한 가해 당사자가 국군이라는 심정만 있을 뿐 누구의 소행인지 알지 못하였으며 호적에는 공비들이 출몰하여 자행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가 1998년 미국의 기밀해제된 문서에 의하여 국군이 자행한 만행이란 사실을(이 위원회 보고포함) 발견하게 되었으며 2007년 6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의 조사에 의해 본 사건의 가해자가 국군 2사단 25연대 3대대 7중대 3소대(소대장 유진규 소위)와 2소대(소대장 안택? 중사)로 밝혀졌다. 당시 군은 독비산(돌비를 잘못 기록한 것으로 추정 마성면 외어리의 산북면 석봉리 굴골마을 사이 단산, 석봉산의 정찰명령을 받고 호계면 선암리를 출발하여 석달마을을 지나다가 상부의 명령이나 주민들에 대한 아무런 신분확인조차 없이 만행을 자행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중대장 류홍철대위는 사건이 발생할때까지 알지 못했으나 범죄의 은폐 및 왜곡에 상당한 역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억울하게 참살을 당한 영령들 가운데 영문도 모르고 숨져간 어린 원혼들의 넋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자 유족들의 뜻에 따라 문경시의 지원으로 이 위령비를 설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