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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신채호의 아내 박자혜 애국지사는 어린 시절 궁궐에 들어가 10여 년간 궁녀로 살았다. 1919년 기미 독립 만세운동으로 부상을 당한 사람들을 죽을힘을 다해 간호한 장본인이다. 일본 동양척사회사에 폭탄을 던진 나석주 의사를 도운 사람도 박자혜 애국지사이다. 박 애국지사가 1936년 여순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남편 신채호 선생의 호적에 오르지 못한 기막힌 사연도 전해지고 있다. 신채호 선생은 일제 강점기 때 ‘황국시민이 될 수 없다’며 호적을 거부해 무국적자가 된 독립 운동가였다. 73년 만인 2009년 법이 개정돼 호적은 되찾았지만 법적으로 부인이 존재하지 않아 아직까지 부부라는 사실을 국가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비록 법적으로는 부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신채호 선생과 박자혜 애국지사의 결혼 사실은 보훈처 공훈 전자사료관에서는 인정하고 있다. 현재 신채호 선생 부부는 고향인 충북 청원군 선산에 합장돼 있다.
대한민국 법에 혼인증명서를 제출해야만 혼인이 성립되는 조항 때문에 박 애국지사가 아직까지 신채호 선생의 아내라는 것을 인정받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이 가슴을 저민다.
출처 : 충북출신 독립유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