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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봉 집사는 1909년 5월 25일 충청북도 청원군 현도면 시동리에서 출생하였다. 1924년 부강교회 선교사와 성도들의 전도로 기도처에서 영적 각성을 겸험한 후, 일제 강점기 1929년 시동교회를 개척하여 한국전쟁이 발발된 1950년까지 19년간 평신도 사역자로서 복음 사역에 헌신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기독교 박애정신, 자유민주주의 사상, 일제이 탄압에 반대하는 애국애족 정신을 고취하는 설교를 하였다. 마을 주민들에게 한글과 한문을 가르쳤고, 글씨를 연습하라고 종이를 나누어 주었다. 신사 참배를 강요받고, 미국 간첩 혐의로 기택 수색과 심문을 당하였다. 1944년 성결교회 폐쇄 이후에도 신앙을 지켰다. 1945년 해방 후 시동교회를 복구하였다 시동리 구장(1946), 제헌의회 선거관리위원(1948), 대한청년단 삼임위원(1949), 농지개혁위원(1950)으로 청주지역의 자유민주주의 건국 계몽 활동에 헌신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장손 김홍국과 피난 중 축북 문의면 도원리에서 지방 좌익 밀고자에게 체포되어 청주 분주소에서 극심한 고문을 당하였으나 끝까지 공산당 전향을 거부하였다. 딸 김정례에게는 "주님이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다. 원수를 갚지 말고 용서하라."는 말씀을 남기며 신앙을 증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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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15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퇴각하는 공산군들에게 9월 24일 밤, 청주 형무소에세 끌려나와 청주 당산공원 반공호에서 적법한 절차도 없이 무참히 학살되어 순교하였다. 그는 탈옥 권유를 거절하고 신앙의 명예를 지키며 영광스러운 순교를 받아들인 숭고한 성결의 인물이었다. 그 거룩한 순교정신을 기리고자 기독교 대한성결교회 성도들의 뜻을 모아 순교 추모비를 세운다. 2025년 9월 2일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제119년차 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