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page
2020년11월30일 월요일 7 (제167호) 관향조 종친회 신라시조대왕의 적장자 가문으로 종중의 문화를 선도하 고,관조이신 밀성대군 후예의 화합과 돈목을 함께 이루어 더 발전하는 밀성재를 지향하고자 개최되는 ‘제3차전국밀 성인화합한마당전진대회’와 ‘자랑스런밀성인대상’ 시상 식이 지난 7일 오전 11시 밀양시 소재 밀성재에서 전국 성 손 1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밀성박씨전국청년회(회장 순 구)주관으로개최됐다. 이날 행사는 1부 시상식과 2부 성손화합한마당 순으로 진행된 가운데 전국의 많은 성손들이 각 분야에서 밀성대 군의 후예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높임으로써 대종회와 청 년회발전을함께이루었는바,대군의유지를받들수있는 권위 있는 포상(褒賞)이 뒷 따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없음 을 탄 식 하 면 서 더 많 은 성 손 들 이 동 참 할 수 있 는 동 기 를 부 여하고자 숭조·애종·육영 분문 각 1명씩을 추천받아 시상 하는 ‘자랑스런밀성인상’에 숭조부문에는 충헌공 후(后) 형원현종,애종부문은산부원군후(后)종식현종,육영부 문밀직부원군후(后)성근현종이수상의영예를안았다. 이날 시상식은 전국에서 지난달 말까지 추천된 성손중 엄격한심사를거쳐선정되었다. △숭조부문의 형원 현종은 1945년 생으로 월남전 참전 수많은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국가유공자로 1968년 에 ‘화랑무공훈장’과 ‘월남참전종군기장’을 수상 받은바 있으며,전역 후 종사에 뛰어들어 평생을 선조 현창사업에 이바지했다. 30여 년 동안 발품을 팔아가며 수집한 족보와 고문서 등 총 15종 125책의 방대한 자료와 선조의 신도비 탁본 등을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하였으며, 종중의 재실에 선조의 유묵과 방대한 분량의 자료실을 만들어 후손들 에게 자부 심을심어주고있다. △애종부문 종식 현종은 1948년생으로 밀성박씨전국청 년회 4대 회장을 역임하면서 청년회 발전을 이끌어 왔고, 합천 봉양재를 비롯한 대소 문중의 임원을 맡아 종원들의 친목과 우의를 다지는데 주력하였으며, 진주시 유도회장 으로유림인의화합과우의를다질수있도록헌신해왔다. △ 육 영부 문 성 근 현 종 은 1934 생으로 평생을 교직에 몸 담으며 훌륭한 인재를 육성하고, 퇴직 후에는 거창향교에 서 ‘논어’ 강의와 ‘거창 한시대회’를 이끌어오면서 유풍을 진작하고사회를순화하는데크게기여해왔다. 특히 본보에 매월 주옥같은 한시를 보내와 많은 종원들 에게한시의멋과아름다움을선사하기도한다. 한편 순구 청년회장은 대회사를 통해 공손한 손은 주위 사람에게 칭찬을 받고, 반 가운 손은 사람들을 가까 이 끌어 모은다고 말하고 이제 우리 성손 모두의 손 은 일가분들을 끌어들여 밀성대군의 후예로 밀성재 의 구성원이 되어 숭조와 애종의 꽃을 활짝 피워 나 가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강조했으며, 대종회 진국 명예회장은 밀성인대상을 수상한 수상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하고 청년회 회 원들의 우애와 효사상은 늘 자랑스럽고 감사한 마 음을 갖고 있다며 이제 밀 성재의 앞날은 무궁할 것 으로믿는다고말했다. 이어 용희 여성회장은 청년회의 역동적인 활동에 힘입 어 여성회 또한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말하고 우석·초당 고문님의 삶을 교훈으로 삼아 최선을 다 할것이라며축사에갈음했다. 한편 이날 행사는 2001년 창립되어 매년 연례행사로 선 조유적지탐방과 연말 송년의 밤을 개최하였는바, 송년행 사를 주간에 개최하여 전국 성손들이 밀성재를 자연스럽 게 찾을 수 있도록 하여 함께 어울리며 밀성대군의 후예로 자부심을갖고더욱더활성화하고자지난2018년 3월 청년 회 정기총회에서 논의하여 오늘 제3차 행사를 갖게 되었 다. /박영배명예기자(경남밀양시지부) ‘제3차전국밀성인화합한 마당전진대회’성료 지난 7일 ‘제3차전국밀성인화합한마당전진대회’가 개최되어 박순구 회장이 2020년 자랑스런밀성인 대상 수상자들과 함께하고 있다.(사진 왼 쪽부터박성근,박순구,박형원,박종식순) 밀성인대상형원,종식,성근현종수상영예안아븣청년회회원들의 우애와효사상은늘자랑스럽고감사 대한민국 섹소폰 연주의 1인자 로 부상한 박병일 부회장이 감 미롭고 흥겨운 연주로 종원들 을기쁘게하고있다. 양평군 지평면 월산리는 자연부락 4개 마을로 구성되었으 며,취암마을은월산3리를말한다. 취암 마을의 최초 입향은 1500년 초로 추정해보아야 할 것 같다. 이는 아쉽게도 선대부터 전해져 오는 모든 문적이 1950 년 6·25동란으로마을이전소되면서 소실되어 족보에 기록된 문헌으로 추정하면 영해박씨 시종조 관설당(휘 제상)의 40世 경은당(휘 제) 공이 단종절신으로 철원군 근남면 초목동으로 은둔하면서 관직과는 거리를 두었다. 이후 경은당공의 아들 정(禎),손자우춘(遇春)공이평안남도용강군의삼화훈도가 되었고, 우춘(遇春) 아들 시화(時華)는 전라도순찰사, 증손 후계(厚啓)는 이조참의, 현손 계영(繼榮)은 어모장군부사직 으로 출사했다. 그리고 5대손 총(叢)은 평안도의 강동현령을 지낸바 있어 평안도에서 취암 마을로 이거했다고 볼 수 있 다 . 당시 벼슬아치들이 본가를 두고 도성 인근지역에 거처를 두 었으니양평에임시거처를두었을것으로도보인다. 영해박씨 구보를 보면 현령공(휘 叢)을 비롯 그의 후손들의 묘소가 송현(松峴) 건좌(乾坐)로 기록되어 있는데 송현(松 峴)은 취암마을의 고호(古號)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령공 과그의아들선무랑공(휘인온)의묘소는실전되어구전으로 만 전해지는데 진사공 휘 충서(忠恕)의 묘역 부근 고분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당시 많은 사화를 거치면서 불의를 보지 못하는 강직한 성품을 지닌 선조의 거취 때문은 아닌지 짐작 해 본다.이에 취암 마을의 입향은 현령공 휘 총(叢)으로 입향 500여년의 유서 깊은 곳으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영해박씨는 신라만고 충신 관설당 박제상 선생을 시종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온다. 관설당공의 39세 휘 창령(昌齡)의 字 는 원길(元吉)이고, 1377년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문학이 동료 중에서도 으뜸이었고, 20세 시절에 과거에 올라 랑서(郎署)를 거쳐 영흥소윤(永興少尹), 평양서윤(平壤庶 尹)으로 치적을 쌓았다.아들 셋(浪,渡,濟)을 두었는데,장남 박낭은 병조정랑, 차남 박도는 판중추부사, 삼남 박제는 예조 좌랑, 박낭의 아들 박규손은 예빈경, 박천손은 사직, 박도의 아들 박효손은 형조참판, 박인손은 병조정랑, 박계손은 병조 판서 등 모두 쟁쟁한 직책에 있었으나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는 것을 지켜보며, 이들 중 박도, 박제, 박규손,박효손,박천손,박인손,박계손 등 7명과 매월당 김시 습과 정재 조상치 등이 절의를 지키며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초막동으로와함께은둔해이들을구은(九隱)이라한다. 서윤공의 셋째 휘 제(濟)는 돈수 박도 선생의 동생으로 조 정에 있을 때의 휘는 제(濟)자는 형부(亨夫),초야에 있을 때 의 휘는 숭의(崇義) 호는 경은(坰隱)인데 예조좌랑(禮曹佐 郞)을 지냈다.1455년에 돈수공 등 여러분과 함께 김화 초막동 에 숨어 자규사를 지어 서로 부르다가 다시 문천 운림산(文天 雲 林 山 )으 로 들 어 갔 다 가 또 서 쪽 정 양 광 림 산 (定 襄 廣 林 山 ) 에 숨어 아호를 또 불식옹(不食翁)이라 하고 청송부(靑松賦) 를 지어 읊으면서 그곳을 떠 나지않았다. 제자가 일찍이 조용한 틈을 타서 경은(坰隱)이란 호의 뜻 을 물으니 공이 말씀하기를 “서 울 밖 을 교 (郊 ) 라 하 고 교 밖을목(牧)이라하고목밖을 야(野)라하고 야 밖을 임(林) 이라하고 임 밖을 경(坰)이라 하는 것이니 지금 내가 사는 곳이 바로 임천(林泉)인데 경 은(坰隱)이라고 호를 한 것이 마땅치 않으냐?” 또 불식옹 (不 食 翁 )이 란 호 의 뜻 을 물 으 니 한숨을 내쉬면서 서글프게 탄식하기를 “너희들이 알 일 이 아니니라” 제자가 다시 일 어나서 다시 머리를 숙여 묻 기를 “선생님 말씀을 깨닫지 못하니 또한 심의 의심이 됩 니다.” 공께서 한참 말없이 있 다가 말씀하시기를 “선친 소 윤공께서 관직에 계실 때 법 을지키고공도(公道)를 다하 셨는지라 그러므로 항상 여러 자질(子姪)들에게 훈계하시 기를 뷺임금을 섬겨 충성을 극 진히 한 연후에야 가히 관록을 먹는다고 말할 수 있느니라고 한바있다뷻고하였다.” 아들 우(友, 漢의 초휘), 성(性, 楨의 초휘) 형제 모두 총명 하고 준수하여 문학과 도량이 높이 뛰어났으니 대체로 공의 가정교훈이 훌륭하였기 때문인 것이다. 향년 68세로 일기를 마치었다. 경은공(휘 제)의 아들 우춘(愚春) 평안도 삼화훈도를 역임 하였으니그의학문을가름해볼만하다. 휘우춘(愚春)은 지평문중의비조이고훈도공이라한다. 훈도공의 아들 시화(時華)는 전라도순찰사, 손자 무창(茂 昌)은 학생(學生), 증손 후계(後啓)는 이조참의, 현손 계영 (繼榮)은 어모장군부사직 5대손 총(叢)은 통훈대부 강동현령 6대손 인온(仁溫)은 선무랑,7대손 충서(忠恕)는 진사,8대손 이장(而章)은 예조정랑 등 대대로 관직이 이어지면서 지역의 토호세족이된다. 조선말에는 훈도공의 16대손 종우(宗宇)공이 고종22년(18 85년) 무과 병과에 급제하여 선략장군 용양위부사과를 지내 는 등 현세에 이르기까지 법조인과 교수 등 각계각층에서 두 각을보이는성손이많이배출되었다. 영지사는 시종조 관설당공과 그의 아들 백결선생, 진사 휘 충서(忠恕)공 이하 7대손 휘 만기(萬基) 公까지의 위패를 봉 안하고 매년 음력 10월 첫째 일요일 제향을 받들고,종사를 의 논하는곳이다. 후손들의 성금과 종토를 매각하여 그 재원을 마련하였는데 과정을 보면 선조의 음덕이 아닌가 싶다. 1996년 영지사를 건 립하기 위해 종토 2천 여 평을 매각하였는데 1997년 11월21일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금융을 신청하는 외환위 기가발생했다.천정부지로뛰어오르는이율로인해원금보다 배가 넘는 이자소득이 발생하면서 영지사 건립비용을 충당하 고 매각했던 면적과 같은 땅을 매입할 수 있어 선조의 음덕이 아니고무엇일까? 영지사를 구심점으로 하여 후손들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사 람냄새가물씬풍겨지평문중이더발전하길기대해본다. 뱚집성촌탐방 경기도양평군지평면월산리취 암마을(영해박씨) 취암마을전경 가을추수가끝나면서들녁의단풍이 아름다운 자 태를드러내면서마치 온산하가물감을적신듯하 다.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니 위엄을 드러내며 굽어보는 사당이 있어 어느 성씨의집성 촌이구나하는생각에들여다보니영지사(寧砥祠) 편액이보인다. 정결한사당을보니후손들의숭조심을엿볼수있 다.그리고 조금 후 몇몇 어른들이 모여있어 가보 니 영해박씨 지평문중의박용각 회장을 비롯한 문 중어른들이었다.반갑게인사를나누고안내를받 아동네로들어가본다. 뱚▶취암마을입향 진사공(휘충서)묘소-영지사뒤편기슭 뱚▶취암마을선계(先系) 구은사제향광경,경은공박제선생을비롯한 영해박씨7현선조와매월당 김시습,정재조상치선생이 배향되어있다. 홍패-1885년 박종우 公이 무과병 과로 합격했다. 교지-박종우 공이 선략장군용양 위부사직에임용된문서 취암마을 후손들이 길을 안내하며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 가운데 종부 (宗婦)이남환여사이고그 옆오른쪽이 박용각종친회장이다. 영지사전경 뱚▶유적영지사(寧砥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