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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56년 경북 영일에 태어나서 유년기를 고향에서 보내고 포항고등학교를 졸업하고 ’77년 공주사대 미술교육학과에 입학하였다. ’79년 군 복무 후 복학하여 ‘ 문학회’동인 활동을 하였다. ’80년 광주항쟁 직전에 학내 민주화 투쟁 단식 농성단 활동 등 학내민주화에 적극 활동하였다. ’83년 대학졸업과 동시에 교사의 길을 걸었다. 첫 부임지 안동중학교, 복수여중에서 근무하였다. ’87년 민주화운동 이후 교직원노동조합 운동에 투신하였다. ’87년 전교련 안동교사협의회 부회장을 맡는 등 활동하면서도 ’89년 첫 시집「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를 간행하는 등 왕 성한 문학활동으로 전인교육 실현에 기여하고자 하였다. ’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 합 결성과 관련하여 복수여중에서 해임되었고, 이후 전교조 단양지회 상근활동을 하면서 단양지역 문학활동과 전교조 활동에 전념하다가 ’93년 4월 14일 단양중, 매포중, 단양국민학교 현장방문을 하고 단양지회모임 후, 늦게 귀가하여 취침 하 던 중 ’93년 4월 14일 새벽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운명하였다. 동지는 생전에 시집「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슬픈눈」을 발표하였고, 유고 집은「성냥개비에 관한 추억」, 「물처럼 불처럼 바람처럼」이 출간되었다. 동지가 해고시절 복수여중 개학날 등교투쟁을 전개할 때 육성회 회원들에게 떠 밀려 교문을 나오게 되었고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을 때 조서를 거부하려고 자신의 지문을 물어뜯으면서 온몸으로 저항하는 동지에게 경찰은“그래 봤자 계 란으로 바위치기야”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에 동지가 남긴 시는다음과 같다. 정영상 (당시37세) 경북 영일 대송면 남성1동에 안장 1956년 2월 12일 경북 영일 출생 1972년~1976년 영일중, 포항고 졸업 1983년 공주사대 미술교육과 졸업, 안동중 부임 1987년 안동교사협의회 부회장 1989년 8월 안동 복수여중에서 해임, 전교조 안동지회 부지회장 1990년 이후 안동지회에서 단양지회로 전출하여 활동 1993년 4월 14일 운명 끝내살리라 |13| |12|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김영삼정권 노동 나는계란이다 계란으로바위를치면 나만박살난다는 바로그생계란이다. 그러나사람들아 부끄러워하라. 내앞에서 부끄러워하라. 너희는누구어디 나처럼 온몸으로박살나도록 으깨져본적이있는가 바위같은큰적앞에 온몸으로피투성이로 내장까지흘러내리며 싸워본적이있는가. - ‘절규3 나는계란이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