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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개척하여 오늘에 청소 안식일교회로 발전하였으니 교회 역사 우금 83년의 장족이다. 서기 1910년 경술국치 이래로 지사께서는 국가관과 민족 정의에 조국광복에 열중하여 동지를 모으니 청소면 성연리 신태종가에서 강영국 김사구 지사를 비롯 8인이 독립만세를 결의하고 횃불을 치켜들고 만세시위는 진당산 봉우리에서 외쳤다. 당년 4월 왜경에 체포되어 동참한 6인은 경범자로 훈방하고 김사구 강영국 양지사는 소위 치안범죄자로 6월 4일 공판에서 6개월형이라 지사께서는 강도당한 조국을 주권자인 우리가 독립하고자함이 지극히 당연하거던 적반하장으로 범죄이라니 그 부당함을 호통치고 공소하니 일제는 소위 고등법원 판결이라며 8월 7일 다시 6개월형이라 지사께서는 미결에서 판결까지 1년을 넘었으니 일제와의 항거는 옥중 옥외가 따로 없었다. 더구나 일제말엽에는 우리 농민들을 수탈하는 공출제도를 반대하였으며 노력 착취를 불굴하고 징용 징병 정신대 등 비인도적 억압을 결사 항거하니 왜경은 지사를 요시찰인물로 항일 행동을 제약이라고 상해임시정부 요원과도 그 누구와도 연락이 두절 지사는 세상을 등지고 고향을 떠나 방화 처가 장항부두에 머물렀다. 조국 광복 후에 부모형제 고향인 청소 땅에 도라와서 서기 1946년 3월 2일 향년 68세를 일기로 영면하시니 가신지 47년만인 서기 1993년 4월 13일 독립유공자로 대통령표창을 받았으며 보령시에서는 덕원 휴게소에 지사의 충의비를 세웠으며 김해 김여사는 지사 외 지우로 생사동당하니 묘는 건위 합폄 연이나 묘의 미비하야 신준희 보령시 백이 주관하고 관민의 협성으로 수비 설상에 지사의 증손인 석규의 성촉하니 유족으로 사윤 두형 태형 손 희갑 희영 희찬 희윤 희철 희설 충언 정부 희중 봉사증손 석규 급 맹규 창규 정규 대규 중규 태규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