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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역사로 읽는 여성독립운동가 ③ • 가슴에 품은 뜻 하늘에 사무친 ‘이은숙’ 69 이덕규(한산 이씨)와 어머님 남양 홍씨의 외동딸로 태어나 스무 살 되던 해인 1908년, 우당 이회영(독립 장, 1962) 선생과 혼인하였다. 이회영 선생은 일가 6 형제와 함께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 운동에 투신하였다. 이를 두고 월남 이상재 선생은 “동서 역사상에 나 라가 망할 때 망명한 충신 의사가 비백비천(非百非 千)이지만, 우당 군과 같이 6형제 가족 40여 명이 한 마음으로 결의하고 일제히 거국한 사실은 예전에도 지금도 없는 일이다. 그 미거(美擧)를 두고 볼 때 우당 은 이른바 유시형(有是兄)이요, 유시제(有是弟)로구 나. 진실로 6명의 절의는 백세청풍(百世淸風)이 되고 우리 동포의 절호(絶好) 모범이 되리라 믿는다”고 할 정도로 일가의 독립운동을 높이 평가했다. 1910년 봄 중국 길림성 유하현 삼원포(三源浦)에 정착한 선생은 1912년에 이주 동포들을 위한 자치기 구인 경학사(耕學社)를 조직하고 신흥무관학교의 전 신인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를 설립하여 개간과 농 업에 종사하면서 한편으로는 독립군 양성에 힘을 쏟 았다. 그러나 1913년, 조선인 암살을 목적으로 일본 경찰이 파견되었다는 정보를 접하고, 다시 국내 로 들 어와 독립군 기지 건설을 위한 군자금을 모집하는 한 편, 고종(광무황제)를 해외로 망명시키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 계획은 광무황제가 붕어함으로써 무산되 고 말았다. 선생은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 나자 상해(上海)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 였으며, 임시의정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24년 4월에는 이정규(李丁奎)·백정기(白貞基) 등과 함께 ‘재중국무정부주의자연맹’을 조직하였으 며, 1928년 7월, 중국 남경(南京)에서 각국 아나키 스트들이 모여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을 결성하자 한국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해 줄 것을 호소하였다. 한편, 1932년에는 만주에 독립운동 근거지를 마련 함과 동시에 주만일본군사령관 암살 등을 목적으로 대련(大連)행 기선을 타고 만주로 향하던 중, 경찰에 체포되어 여순(旅順)감옥에서 순국의 길을 걸었다. 선생의 나이 66세요, 아내인 이은숙 지사가 44세 때 의 일이다. 일제에 나라를 강탈당한 1910년부터 1932년, 남 편이 대련(大連) 감옥에서 순국의 길을 걷고 다시 조 노년의 이은숙 지사 『서간도 시종기』를 쓴 이은숙 여사가 원고지 와 펜을 들고 앉아 있는 모습  중국 북경에서 기념촬영한 이회영(이상 이회 영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