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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독립운동가 열전 • 김구 주석의 경호원 출신 부부광복군 ‘김봉식’ 69 자와 비슷한 ‘석’자 이름 의 가짜가 아버지에게 돌 아가야 할 표창장을 가로 채버린 것이었다. 엉뚱한 사람에게 도둑맞은 표창 장을 되돌리기 위해 황부 일 씨는 생업을 팽개치고 증빙 서류를 챙겨 부산 에서 서울 보훈청(지금의 보훈부)을 여러 해 드나 들었다. 그때 일을 두 번 다시 떠올리기 싫은 듯 황부일 씨는 대담 내내 시선을 먼 곳에 두었다. “아버지는 26살 때인 1939년 말 고향인 경북 영일 을 떠나 중국으로 건너가셨습니다. 1940년 한국광복 군에 입대해 중국군 중앙전시간부훈련단 한청반(韓 靑班)에서 군사훈련을 받았습니다. 이어 이범석 장군 이 이끌던 중국 서안(西安)의 광복군 제2지대에 배속 되어 활동하였습니다. 어머니는 1940년 2월 한국청 년전지공작대에 입대하여 항일투쟁을 하던 중 1940 년 9월 한국광복군이 창군되자 중국 서안에 본부를 둔 광복군 제5지대에 편입되었습니다. 이후 1942년 5월 제5지대가 제2지대로 개편됨에 따라 아버지와 같은 제2지대 대원으로 활약했지요. 아버지는 이후 1944년 4월 한국독립당에 입당하 였으며, 그해 6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이 무렵 임시정 부는 중경에 있었음) 내무부 자리로 옮겨 백범 김구 주석의 경호원(경위대원)이 되어 활동하셨습니다. 아 버지는 영어, 일어, 중국어에 능통했으며 1945 년 6 월에는 광복군 총사령부로 발령이 나서 경리처 소속 의 양복과원(粮服科員)으로 복무하였습니다. 양복과 원이란 말 그대로 군대의 식량과 의복을 책임지는 부 서로 요즘으로 치면 군수과 또는 병참부서에 해당할 겁니다.” 황영식, 육사7기 졸업 후 육군 중령 예편 광복 후 고국으로 돌아온 황영식 지사는 국군의 전 신인 국방경비대에 입대했다가 국군이 창설되면서 육사7기로 졸업하여 장교로 복무했다. 그 뒤 1961년 육군 중령으로 예편했다. 그때 황영식 지사 나이 48 살 때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당시에 육사 7기는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눠서 뽑았는데, 전반기에 지원한 경우 광 복군 출신에게는 특혜가 있었음에도 아버지는 일부 대한민국임시정부 주화대표단(1946.4). 주화 대표단은 임시정부 환국 후 중국내 동포 보호  및 잔무처리를 위해 만든 조직으로 맨 뒷줄 왼 쪽 네모 속의 인물이 황영식 지사 1963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명의로 발행한 대통 령표창장에는 황영식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황영석 이라는 사람이 ‘식’자를 ‘석’자로 고쳐서 19년간 황 영식 행세를 했다. 이후 국가보훈처는 이 표창장을  회수하여 ‘식’자로 고쳐 황영식 아드님인 황부일 씨 에게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