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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순국선열 • 송학선 선생 69 다렸으나 오지 않았다. 그 다음날인 4월 28 일에도 칼을 품고 평소처럼 위에는 셔츠를 입고 밑에는 한복 바지를 입은 뒤 평상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오전 11시쯤 돈화문 근처 에 도착하여 금호문 주위를 서성대며 기다렸 다. 그런데 정오쯤에 일본인 세 명이 탄 무개 차(無蓋車) 한 대가 창덕궁으로 들어가는 것 을 보게 되었다. 송학선은 그 차가 총독부의 고위관리라고 생각했다. 오후 1시 10분 경 조문을 마친 그 자동차가 금호문 안에서 나 오는 것을 보았고, 차 에는 세 명이 타고 있었 는데, 중앙에 앉은 자가 총독 사이토의 모습 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군중 속에서 누군가가 “사이토 총독이다”라고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에 자동차 뒤를 따라가며 동정을 살피면 서 실행의 기회를 엿보았다. 금호문을 빠져 나온 자동차는 와룡동(臥龍洞) 창덕궁경찰서 장 관사 앞에 다다랐다. 그곳에는 창덕궁으 로 가는 사람들이 길을 메우고 있었다. 자동 차는 그곳으로 더 이상 갈 수 없어, 다시 돈화 문 방향으로 차를 돌려 천천히 올라오고 있 었다. 잠깐 머물고 있을 때 송학선은 그 기회 를 놓치지 않고 비호같이 자동차의 왼쪽 승 강대로 뛰어 올라 왼손으로 차창을 잡고 오 른손으로 칼을 뽑았다. 그러자 왼쪽 앞자리 에 있던 자가 급히 손을 들며 일어나 저지하 려 하니, 송학선은 그 자의 오른쪽 가슴과 왼 쪽 허리를 찔러 쓰러뜨렸다. 그리고 총독이 라고 생각한 자를 향해 가슴과 배를 찔러 쓰 러뜨리니 전광석화와 같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송학선이 사이토로 생 각하고 처단한 사람은 사이토 총독과 체격과 생김새가 비슷한 일본인민회(日本人民會) 이 사 사토[佐藤虎次郞]였다. 그리고 자동차의 왼쪽에 앉아있던 사람은 국수회(國粹會) 부 회장 타카야마[高山孝行]였고, 오른쪽에 타고 있던 자는 경성부협의회 의원 이케다[池田長 의거 당시 ’금호문 사건’ 현장 사진 금호문 사건’ 보도 『동아일보』기사(이상 국사편찬위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