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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임병직 박사 생가
이곳은 일제 식민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신 임병직(1893~1976)박사께서 1893년 태어난 곳으로 선생의 애국.애족정신을 후세에 전하고자 부여군에서 2003년 11월 생가를 복원하였다. 선생은 1919년 국내에서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의 양민학살, 고문 등의 만행을 여론에 환기시키고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이승만의 비서로서 구미위원에서 활약하면서 일황에게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라는 이승만의 친서를 일본공사관에 전달하기도 하였다. 1921년 초에는 임시정부 외교부 참사 황진남과 상해를 출발하여 파리, 런던 등을 순회하며 유럽제국에 일본의 침략 만행을 규탄하는 외교공세를 펼쳤으며, 1941년 4월 20일 호놀루루에서 해외한민족대회가 개최되어 재미한족연합회가 구성되자 그는 김호, 한시대, 김병언등과 집행부 위원에 선출되어 활약하였다. 1942년 2월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인국방경비대가 조직되어 김용성이 사령관에 임명되고, 그는 선전과 참위로 임명되었다. 1943년에는 구미위원부 무관으로 이승만을 도와 한미외교교섭에 기여하였다. 공복 후에는 대통령 특사, 외무부장관, 유엔대사 등을 역임하며 건국에 이바지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76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