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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18년 1월 충남 서천군 한산면 구동리에서 아버지 양순태씨와 어머니 함담옥씨 사이에서 7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다. 부모님이 모두 장로와 권사를 역 임하는 등 집안이 모두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한산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37년 역시 기독교 신자인 이영례씨와 결혼 삼남 삼녀를 두었다. 동지는 한국 기독교 장로회 충남노회 부노회장을 역임하며, 충남기독교 농민 회 창립에 참여 초대회장을 지냈다. 농민회 활동을 하며 강경 불량 토마토 종자 피해투쟁과 장항제련소 공해피해투쟁, 농축산물 수입개방 반대투쟁, 농가부채 탕감 투쟁 등을 통해 이 땅의 자주 농업을 지키며, 지역의 투쟁에 함께 하였다. ’88년에는 서천군 수세거부 대책위원회 준비위원장을 맡으며 올바른 농업정책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투쟁에도 앞장섰다. 이러한 동지의 노력은 한국기독교 농민회 창립 10주년을 맞아 공로패를 수상 하기도 하였다. 평생을 농민으로 자주농업과 농민들의 권리 증진을 위해 바쳤던 동지는 ’95년 77세의 나이로 운명하였다. 만년청년! 상록수! 우리는생전에당신을그렇게불렀습니다. 쉰일곱의나이에농민의가난이잘못된사회구조 때문임을깨달은이후, 당신은항상문제의현장속에계셨습니다. 강경의불량토마토종자피 해보상, 장항 제련소의 공해피해 보상, 농축산물 수입개방반대, 농가부채탕감, 농어촌의료보 험통합등, 투쟁의중심에서구호를외치고농민가를부르며농민사랑을행동으로보이셨습 니다. 부당수세폐지투쟁시에는이지역의준비위원장을맡아과로로쓰러지면서까지온마을 을누비셨습니다. 나태한농민들을깨우치려고백발을휘날리며자전거를타고논밭길을달리 시던 당신의 숭고한 모습은, 2.13 여의도 농민대회의 함성과 함께 우리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있을것입니다. 이같은당신의뜨거운열정은군사독재정권에맞선민주화투쟁으로반통 일세력에맞선통일운동으로땅과자연과사람이더불어사는생명운동으로승화되었습니다. 우리들이행여곁길을걷고싶을때, 실망에빠질때, 50리밤길을걸어농민집회에참여하시 던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생전에 소망하시던 농민 세상 우리들에게 맡기고 편히쉬소서. 예 수부활그날농민들과더불어청년양주석으로부활하소서. - 1996년6월3일전국농민회총연맹서천군농민회일동- 끝내살리라 |137| 양주석 (당시77세) 1918년 1월 충남 서천군 한산면 구동리 출생 1932년 한산 보통학교 졸업 1953년 1월 2일 오덕교회 장로 1955년 12월 24일 금강교회 개척 1976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충남노회 부노회장 1983년 11월 11일 충남기독교 농민회 창립 초대회장 1984년 5월 강경 불량 토마토 종자 피해투쟁 1984년 6월 장항 제련소 공해피해 투쟁 1985년 한국기독교 농민회 총연합회 중앙상임위원 1986년 농축산물 수입개방 반대 투쟁, 농가부채 탕감 투쟁 1988년 9월 21일 서천군 수세거부 대책위원회 준비위원장 1989년 2월 13일 서천군 농민회 지도위원 1992년 9월 충남도연맹 창립 1주년 공로패 수상 1992년 11월20일 한국기독교 농민회 창립 10주년 기념식에서 공로패 수상 1995년 6월 3일 노환으로 운명 |136|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김영삼정권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