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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m 국군은 점령한 983고지의 방어를 미군이 맡아주기를 건의하였으나 미국은 거부하였고, 적은 26일 대규모의 역습을 시도하였다. 결국 포위된 제 36연대는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한채 후퇴하고 말았다. 9월 초가 되도록 능선에서 공격은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국군과 미군의 합동 공격 작전이 성공하면서 적이 점령한 983 고지는 포위상황에 있었고, 결국 9월 3일 적은 고지에서 후퇴, 미군이 5일 14시경 983고지를 점령하였다. 후퇴한 북한군은 후방에서 전열을 가다듬은 후, 단장의 능선 전투를 개시하였다. 피의 능선 전투는 1951년 8월 18일부터 9월 5일까지 강원도에서 일어난 전투이다. 피의 능선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많은 사상자 발생해 능선이 피로 넘쳐 흘러 종군기자들이 이 능선을 피의 능선이라는 이름으로 보도하면서 생겨났다. 이 전투로 인해 국군과 미군은 1개 연대 규모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북한군은 1개 사단 규모 이상의 피해를 보았다. 북한군은 펀치볼 북쪽 능선으로 물러서게 되었으며 한미 양군은 피의 능선을 장악하여 백석산, 대우산 간의 측방 도로를 확보하였다. 당시의 격전지에 1980년 11월 11일 이 전투를 기념하기 위한 전적비가 세워졌다. 67 강원 양구군 동면 월운리 산 46-2 월운 저수지 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