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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전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명은 될 것입니다. 저는 2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수류탄의 폭음은 나의 고막을 찢어 놓고 말았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제 귓속은 무서운 굉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머님! 괴뢰군의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너무나 가혹한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이라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우기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님! 전쟁은 왜 해야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니께 알려드려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지금 내 옆에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빛 아래 엎디어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엎디어 이 글을 씁니다. 괴뢰군은 지금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 저희들앞에 도사리고 있는 괴뢰군 수는 너무나 많습니다. 저희는 겨우 71명 뿐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머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까 조금은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습니다.
어머님!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이!' 하고 부르며 어머니 품에 덜썩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제손으로 빨아 입었습니다. 비눗내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한가지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어머님이 빨아 주시던 백옥같은 내복과 제가 빨아 입은 그다지 청결하지 못한 내복의 의미를 말입니다. 그런데 어머님 저는 그 내복을 갈아 입으면서 왜 수의를 문득 생각해 냈는지 모릅니다.
어머님!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 모릅니다. 저는 많은 적들이 저희를 살려두고 그냥은물러 갈 것 같지가 않으니깐 말입니다. 어머님 죽음이 무서운게 결코 아닙니다. 어머님이랑 형제들도 다시 한번 못 만나고 죽을 생각을 하니 죽음이 약간 두렵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 가겠습니다.꼭 살아서 돌아가겠습니다. 왜 제가 죽습니까. 제가 아니고 제 좌우에 엎디어 있는 학우가 제 대신 죽고 저만 살아겠다는 것은 절대아닙니다. 천주님은 저희 어린 학도들을 불쌍히 여기실것입니다. 어머니! 이제 겨우 마음이 안정이 되는군요.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어머니 곁으로 달려 가겠습니다. 웬일인지 문득 상추쌈을 게걸스럽게 먹고 싶습니다.그리고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벌컥벌컥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어머니! 놈들이 다시 다가 오는 것 같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님! 안녕! 안녕! 아뿔사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이따가 또...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 학도병 이우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