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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英增頌德碑(이영증 송덕비) 판독이 쉽지않다. 흥천면지에 의하면 이 송덕비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렀지만, 공훈록에서는 찾을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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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증 송덕비(李英增 頌德碑) 전(前) 정릉참봉(貞陵參奉) 삼화거사(三花居士) 진흥회장(振興會長) 이영증의 송덕비이다. 이영증(1870~1943)의 자(字)는 사원(元)이며 호(號)는 삼화(三花), 본관은 전주로 세종대왕 8왕자 영응대군 14대손으로 홍천면(당시 길천면) 신근리에서 이경노(李景老)씨의 3대독자로 태어났다. 이영증은 정릉참봉 당시 일제에 의한 강제병합이 조인되자 의병활동을 하다 만주에서 허벅지에 총상을 입고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으나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그는 지역진흥회장으로 권농사업과 도로 개설, 공공시설 건립(공회당 건립, 수리시설), 마을공동답 조성등의 공로로 1924년경 홍천면 입구 신근리 삼거리에 송덕비가 세워졌다. 이 때 42번 국도에서, 즉 신근1리 입구로부터 홍천면사무소까지의 최초 도로가 개설되었다. 그 후 송덕비는 면도(지방도) 확 포장사업으로 1976년에 홍천초등학교 교정으로 이전되었다. 비문은 남아있으나 풍우로 마모돼 식별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