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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2025년 10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여성독립운동가 열전 ‘일찍이 조선 사회운동의 선구자로 살과 뼈를 깎아 넣었던(조선일보, 1928.1.7 기사 가운데)’ 박원희 지 사는 1920년대에 활동한 사회주의 여성운동가 가운 데 가장 대표적인 여성으로 1915년 경성여자고등보 통학교 부설 사범과를 졸업하였다. 그 뒤 철원공립보 통학교에서 교사 생활 3년을 마치고 오라버니의 조 선노동공제회 활동을 지켜보면서 민족운동에 관심 을 가졌으며, 훗날 남편이 되는 김사국 지사와 만나 사회주의 사상을 통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21년 7월, 김사국 지사와 결혼한 박원희 지사 는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하면서 노동자의 처지 를 인식하고 구태의연한 전통과 관습에 젖어있는 조 선 여성들의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귀국 뒤에는 여 성운동에 뛰어들어 남편인 김사국이 주도한 서울청 년회계의 청년당대회(靑年黨大會)에 참여하였다. 한 편, 1923년 남편과 함께 간도 용정(龍井)에 동양학원 을 설립하여 민족교육을 실시하는 등 만주와 조선을 오가며 끊임없이 조국 광복을 위한 폭넓은 독립운동 에 뛰어들었다. 박원희 지사는 1924년 5월 서울에서 첫 사회주 의 여성단체인 여성동우회(女性同友會)를 창립하여 여 성의 권익향상과 계몽운동에 투신하였다. 이어 1925 년에는 경성여자청년회(京城女子靑年會)를 조직하 고 집행위원에 선임되었다. 또한 1927년 4월에는 중 앙여자청년동맹의 집행위원에 선임되어 ‘청소년 남 녀의 인신매매 금지, 만 18살 이하 남녀의 조혼폐지, 청소년 남녀직공의 8시간 이상 노동 야업 폐지, 무산 아동과 산모의 무료요양소 설립’ 등을 위한 활동을 지속하였다. 이 시기는 남편 김사국 지사를 여의고 어린 딸을 혼자 키우던 때로 박원희 지사는 자신의 몸을 돌볼 새도 없이 조국광복을 위해 동분서주하다 아기가 세 살 되던 해인 1928년 1월 5일, 서른의 나이로 순국의 길을 걸었으니 그 안타까움이 더욱더 크다. 이날 김윤숙 씨 집 방문은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2022)을 펴낸 정종배 시인과 함께했다. 김사국ㆍ박 김윤숙(왼쪽), 김영숙 자매. 외할머니(박원희)가 일본 유학시절 구입 하여 재봉일로 학비를 벌었던 100년이 넘은 재봉틀은 이후 자매의 어머니(김사건 여사)가 평생을 이 재봉틀로 옷을 만드는 등 모녀의 손때가 묻은 유품이라고 했다. 박원희 지사는 끊임없이 일제 경찰의 감시를 받았다(경성종로경 찰 서장이 작성한 「근우회 상무집행위원회」 문서, 1927.7.20).